‘구라’가 그리워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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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가 그리워지는 시절
  • 충청리뷰
  • 승인 2019.05.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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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이인영 나경원 송현정, 세 사람의 공통점은 최근 말로 인한 해로움, 이른바 설화(舌禍)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인영은 옆사람과 공무원에 대한 불신을 밀담으로 나누다가, 나경원은 ‘달창’이라는 인터넷 은어를 (본인의 해명대로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입에 올렸다가, 송현정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독재자’라는 단어를 질문에 사용했다가 여론으로부터 호되게 당하고 있다.

요즘은 언론사 기자들도 취재와 활동과정에서 자기가 하는 말에 보통 신경쓰는 게 아니다. 혹시 말실수를 하지는 않았나? 상대방에서 녹취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들 때문이다. 근래들어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말’로 인한 유명인들의 시달림을 목격하다 보니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상대의 말꼬리를 물고늘어지는 작금의 국가적 현상(?)’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별 생각없이 뱉은 말 한마디에 정국이 요동치고 당사자들은 하루 아침에 활동무대에서 사라진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도의적으로 결코 용납되지 못할 ‘막말’은 여론의 응징을 당해도 싸다. 최근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상대를 향해 저주의 악담을 퍼붓는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다.

그게 아닌 편한 사람끼리 터놓고 나누는 사담(私談)조차도 밖으로 전해져 도마위에 올려지고 발언의 당사자가 돌연 치도곤을 당하는 건 큰 문제다. 특정인의 말꼬리를 트집잡아 서로 미주알고주알 공박하는 TV프로그램이라도 보게 되면 국가문화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다가도 움칫 말의 실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요즘 세태다. 만약 우리나라 공인중 누구라도 트럼프처럼 허접스러운 말을 했다가는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성의 단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꼭 인용되는 것이 하나 있다. 유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머라는 것은 다소의 과장과 허풍이 들어가야 맛깔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분위기는 이 정도의 과장, 이른바 하얀 거짓말 수준의 ‘뻥’조차도 입 밖으로 내기가 겁이 난다.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을 농담으로 웃어 넘기지 못하다 보니 이 틈새를 비집고 발광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쇳소리와 막말 뿐이다. 점점 더 살벌하게 진화하는 정치인들의 막말 시리즈는 이 때문에도 앞으로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유머의 확장성, 더 나아가 유머의 생활화를 굳이 한국적 정서로 재단한다면 ‘구라’를 떠올리게 된다. 구라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그 거짓이라는 것도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거나 폄훼하지 않는, 오히려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기는 말의 양념이 된다. 남을 속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되레 즐겁게 하기 위해 청산유수의 언변을 구사하는 사람을 흔히 구라라고 부른다. 우리의 일상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

웰빙과 힐링이 강조되는 이 시대의, ‘3대 구라’라고 하는 주말 골퍼와 산행인 그리고 낚시꾼들을 예로 들어보자. 아마추어 골퍼들이 입만 열면 떠벌리는 것 중에 하나가 드라이버 300야드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힘이고 실력있는 남자 골퍼들이라도 200m를 못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공식 보고서까지 나왔다. 그런데 필드에선 거의 100% 골퍼들이 200m는 애들이나 날려보내는 거리라고 비아냥댄다. 듣는 사람은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주말 산행길에 만난 등산객은 목적지가 아무리 멀어도 “다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고기를 걸었다가 놓쳐버린 낚시꾼은 100% 월척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역시 별 의미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저 즐거운 말일 뿐이다.

한 차원 높여 ‘조선 3대 구라’라는 것도 있다. 재야 노동통일운동가 백기완과 왕년의 협객 방동규, 소설가 황석영을 일컫는 말이다. 백기완의 구라는 그가 한창 활동할 때인 7, 80년대 민주화운동시기에 최고 빛을 발했다.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독재와 기득권을 향해 온갖 독설과 허풍을 퍼부으며 ‘가자! 민중의 나라로~~’를 외칠 때도 결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시원하고 통쾌하고 재미가 넘쳐났다. 내가 보기엔 지금 나경원의 옹알이 수준 독설과는 차원이 다른 뻥이었던 것이다.

시라소니 이후 조선 최고 주먹이라는 방동규는 백기완이 대통령후보 때 경호대장을 한 인연으로 그로부터 구라를 본격 전수받았다고 한다. 패션가게를 운영하며 전국순회 패션쇼를 열었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 헬스클럽 강사로 일하면서 “주먹보다 강한게 말발”이라고 했다. 황석영은 신문에 장길산을 연재하며 그 가공과 허풍이 얼마나 셌던지 기자들로부터 ‘황구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입만 떼었다 하며 사람들은 뻔한 거짓인줄 알면서도 함께 동조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들도 이젠 설 땅을 잃었다. 나이도 들고... 그보다는 자신들의 구라가 더 이상 먹히지 않을 정도로 우리사회가 서로 각지고 반목하고 이기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구라가 사라진 그 공간에 대신 막말과 말꼬리잡기가 횡행하면서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불신과 증오, 갈등의 용광로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유머가 없어진 게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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