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사람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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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사람 구합니다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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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은 ‘셀러리맨의 신화’였다. 1980년대 초 한 공기업의 기술직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충북을 무대로 종횡 무진하다가 서울 본사의 인사부서를 거쳐 자회사의 사장을 역임했다. 40대 후반의 젊은 사장은 패기가 넘쳤다. 무엇이든 다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외환위기로 회사는 어려워졌고 지금부터 딱 10년 전 ‘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짧은 퇴임사와 함께 옷을 벗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이라 퇴직 후 취업자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취업한 회사는 그에게 1년 계약, 다음해는 6개월 계약서를 제시했다. 이렇게 몇 곳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한때 ‘셀러리맨의 신화’로 기억됐던 그는 끝내 자신이 30여년을 몸담았던 업종, 자신 있는 기술을 펼 회사를 찾지 못했다.

이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한다며 50대 중반에 부동산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무실을 열었지만 운영은 생각 같지 않았다. 돌아보니 친했던 동창 중에 반이 공인중개사였다. 그는 다시 구직을 위해 일자리지원센터를 찾았고, 현재 한 학교기숙사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업구조가 바뀌다보니 일자리가 변화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20년 30년 사회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이 사라지는 점은 아쉽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은 이런 현실을 지적했다.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주인공(앤 해서웨이)은 육아 시간까지 할애해 일하는 열정파다. 영화는 그가 풍부한 인생경험을 갖춘 70세 인턴(로버트 드 니로)을 채용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속에서 열정이 넘쳐 냉정하지 못했던 젊은 CEO는 가정과 조직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갖춘 리더로 성장한다. 70세 인턴은 중간 중간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게 조언하고 기다려주며 변화를 이끌어 간다.

지금 사회라는 큰 생태계에서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화와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스타트업, 신규창업자들을 만나다보면 경험부족이 아쉽다. 개중에는 좋은 기술을 갖고 있지만 편중된 시각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경험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지도가 필요하다. 외부 멘토도 필요하겠지만 구인시장에 나온 경험 많은 사람을 채용해 보면 어떨까?

최근 취임한 한 CEO는 조직을 채비하며 이런 말을 했다.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보직에 있다고 해서 선배를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 선배는 그 자리를 지키며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이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선배는 ‘꼰대’가 되면 안 되고 후배는 선배를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의 많은 선배들이 자기의 경험을 뒤로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 정부에서 2011년부터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하지만 아직까지 호응이 높지 않다. 이런 제도가 정말 필요한 곳은 새로 자라나는 청년기업들이다. 사회구조가 빠르게 변화한 우리나라에는 다른 어떤 나라들 보다 경험 많은 노년 인프라가 있다. 앞으로 은퇴한 경험 많은 이들을 청년기업에서 서로 찾는 풍토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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