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서사 시대의 이미지와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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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사 시대의 이미지와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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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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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데스 로봇> 과 김동식 소설집

김미향 
출판평론가·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데이빗 핀처와 팀 밀러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 로봇>을 봤다. 즉물적인 이미지들이 영화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점쳐보는 재미를 주었다. 전반적으로는 실존적이고 묵직한 질문이 가득했다. <러브 데스 로봇>의 시리즈 중 가장 짧은 에피소드는 6분가량의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다. 『노인의 전쟁』으로 존 갬벨 신인상을 수상한 존 스칼지의 동명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현재 또는 근미래 정도로 추정되는 미국. 어느 날, 과학자들의 실험에서 이상한 요거트가 탄생한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요거트는 인류에게 풍족함을 주고 지구를 지배하게 되는데, 10여 년 뒤 인류에게 질려서 우주로 떠난다. 이 작품에서는 미국 특유의 패권국으로서의 욕망과 불안함,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우리를 지배하는 게 누구라도 상관없다, 설령 요거트라도'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따르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인류가 "자본주의 체제를 계속 홍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적절히 보살피는" 권력자 요거트에게 우리의 자치권을 넘겨주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 <바이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지도자들과 요거트는 무엇이 다른가. 요거트는 급진적인 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지배적인 위계질서를 더욱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이 디스토피아는 요거트의 문화 독점에 따라 진행된다. 어쩌면 요거트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생존 그 자체를 원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돕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주로 떠나기 위한 요거트의 계획을 위해 인류가 이용됐을지도 모른다. 결국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는 우리는 착취당하기 쉬운 존재들이며 따라서 스스로의 자유를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요거트는 외양만 귀여울 뿐, 실상은 영화 <캡틴 마블>의 수프림 인텔리전스나 미드 <시간여행자>의 AI 지도자 디렉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지능이 출중해 인류의 지도자로 부상한 AI 요거트가 인류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게 된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인공기술을 개발해 지각이 생긴다면 우리에게 최고의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 말이다(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그때에 모든 결정은 AI의 손에 달려 있으므로 우리는 결코 일을 하거나 스스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요거트의 지배하에 행복한 인간들처럼.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요거트, 혹은 AI는 어쩌면 이해할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그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기술과 권력의 관계를 천착한 뒤 파시즘의 귀환을 결론으로 내린 유발 하라리의 미래 예측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알고리즘이 실행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안하고 있다.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가 던지는 질문들이 오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이한 유머로 가득 찬 작품들의 질문
 

실상 요거트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은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모방'을 이야기했다. 모방은 형이상학적 사유가 생산해내는 진리에 대한 담론이 구체화되는 하나의 방식이자 동시에 그 담론이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낯설어지는 것을 조정해주는 일종의 수사적 방식이다.

데리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을 형이상학적 사유의 원리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은유'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모방은 실체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실체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은유는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치다.

최근 이러한 은유를 잘 보여주는 책으로 『회색 인간』을 비롯한 김동식의 소설집들을 꼽고 싶다. <러브 데스 로봇>을 보면서 사회에 대한 은유와, 반전이 따라붙는 전개 때문에 자연스럽게 김동식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탈서사 시대의 향유자들을 이미지와 은유가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이상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지와 영상에 열광하고 긴 호흡의 콘텐츠를 소화하기 버거워한다. 두 작품은 모두 초단편으로, 현대의 향유자들을 정확히 꿰뚫는 방식으로 다가간다. 예를 들어 김동식의 네 번째 소설집 『양심 고백』 속 단편 「삼성 공화국」은 삼성의 반려동물 서비스를 받은 개들이 모두 "삼성 삼성" 하고 짖는다는 것 정도로 간단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기 목소리를 잃은 동물을 통해 인간은 어떤가 묻고 있으며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은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술의 발전,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와 김동식의 소설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작품의 현실 풍자는 ‘터무니 있다’. 유쾌한 감성 뒤로 곱씹게 되는 풍자는 알싸하고, 던지는 질문들은 거듭 생각해봄직하다. 기이한 유머로 가득 찬 짧은 작품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양심고백/ 김동식 지음/ 요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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