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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타르트=청주 율량제과’ 입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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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타르트=청주 율량제과’ 입소문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9.05.2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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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구,서울에서 쌓은 10년 노하우 담겨
매일 조금씩 구워 더 맛있는 건강한 빵집

2019 ‘숲속책빵’은 ‘숲속에서 빵 먹고 책 보고’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숲속책빵’은 지역의 젊은 빵쟁이와 서점지기들의 등불이 되기 위해 시작됐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골목에서 대형 프랜차이즈와 경쟁하는 업체들이다. ‘숲속책빵’에서는 이들이 한데 모여 유기적으로 교류한다. 이번호에서는 ‘숲속책빵’에 참여하는 ‘율량제과’를 소개한다.

신재희 율량제과 대표 /육성준 기자

 

공학도에서 제빵사로

 

‘율량제과’는 2017년 7월 문을 열었다. 채 2년이 안됐지만 청주에서는 나름 자리잡은 인기 빵집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율량제과 ‘에그타르트’는 구하기 힘든 제품으로 소문났다. 신재희 대표는 “달걀노른자, 생크림을 섞어 만든 에그타르트는 빵이 얇은 게 특징이다. 이런 식감을 선호하는 손님들이 주로 방문한다”고 말했다.

맛도 맛이지만 혼자 일하는 조그마한 가게이다보니 만들 수 있는 양이 적어 에그타르트를 구하기가 더 힘들다. 그래도 무리해서 더 많은 양을 만들 생각은 없다. 여기에는 신 대표의 사연이 묻어 있다.

그는 10년 전만해도 공학도였다. 제천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경북 대구 한 대학교의 화장품약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2학년을 마칠 무렵 “화장품약리학이 내 길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공부를 하며 일본어 원서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고민 끝에 일본어도 배울 겸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학비를 지원하고 생활비는 그가 벌어 쓴다는 조건으로 일본유학길에 올랐다. 2년 코스로 일본어를 배웠지만 막상 돌아올 때가 되자 막막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고 나니 주변에 일본어 능력자가 천지였다. 일본어 실력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생활을 하며 작고 아기자기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이걸 배워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소 손재주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컸는데 이걸 핑계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고 멋쩍게 말했다.

 

율량제과에서 만든 '치아바타'

 

달걀껍질 닦으면 혼나

 

신 대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경제과학교에 입학했다. 제빵에 대한 기술은 없었지만 동경제과학교는 입학요건에서 일본어 능력을 최우선으로 했다. 일본에 살며 N2급을 취득한 그는 일본인들과의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입학에 성공했다.

학교를 다니며 2년 동안 제과·양과를 전공했다. 졸업할 무렵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었을 때 한국의 한 제과점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인 여성 조교 밑에서 배웠다. 학교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했다.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많이 친해졌는데 졸업할 무렵 그가 학교를 그만두었다. 곧바로 대구에 있는 한 빵집에 스카우트 됐고 함께 일하자며 나를 대구로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귀국 후 곧바로 대구에서 제법 큰 빵집에 취직했다. 한국에서 제과·제빵 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첫날부터 달걀껍질을 닦다가 크게 혼났다.

그는 “일본에서는 위생을 철저히 해 달걀껍질도 닦아서 썼는데, 입사한 빵집은 대량으로 빠르게 만들다보니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 일본과 한국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1년 정도 일하며 대량으로 생산하는 법 등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단하나케이크’를 만드는 가게에 취직했다.

‘단하나케이크’는 제빵사가 케이크 밑 부분을 만들어 놓으면 손님이 윗부분을 꾸며 완성하는 방식이다. 오전에는 케이크가게, 오후에는 커피숍에서 일하며 투잡을 뛰었다. 생활하기에 월급이 적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율량제과에서 만든 '에그타르트'

 

율량제과 OPEN

 

2015년 어느 날 신 대표의 형부는 타지에서 고생하는 처제에게 청주로 올 것을 제안했다. 때마침 청주라마다호텔 베이커리에서 사람을 구했다. 그는 곧장 청주로 이사 왔다. “3교대에 박봉이었지만 식자재를 갖고 많은 것을 연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주에서 일하다보니 소비시장도 고객층도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1년여 일하다가 서울로 갔다”고 말했다.

야심차게 상경했지만 서울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몇 년 간 생활하며 마지막에 청담동의 베이커리들에서 일했다. 경험 많은 제빵사들과 논의하며 노하우를 전수받고 그가 쌓아온 지식을 체계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허전했다.

신 대표는 “2017년 5월 어느 날 퇴근하는데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밤새우며 만든 레시피들이 남의 공이 되는 것 같았다”며 “다짜고짜 형부에게 전화해 나에게 투자해달라고 부탁했다. 형부는 청주에 점포를 내는 조건으로 승낙했고 곧바로 율량제과를 열었다”고 말했다.

공학도가 제빵기술을 배워 율량동에 자리 잡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이제 타지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소통하고 보람을 느끼며 옆으로 점점 확장할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율량제과를 운영하며 성안길에 분점을 냈지만 곧장 접었다. 한 번에 두 개의 가게를 관리하는 것은 힘들었다. 앞으로 한 점포에 집중해서 더 알차고 특색 있게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치아바타, 에그타르트와 더불어 공갈빵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공갈빵에 다양한 농산물을 채워 청주 율량제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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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윤 2019-05-29 10:54:17
와우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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