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 30년을 기다린 재심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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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의 ‘무엇’> 30년을 기다린 재심청구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06.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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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5월 ‘북침설 교육’교사로 하루아침에 전국 뉴스를 탔다. 아이들에겐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한 말이 마지막인 줄 몰랐다. 상당고 강성호 교사의 이야기다. 그의 30년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는 이번에 자신과 같은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청구를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 이념의 굴레, 그는 얼마나 많이 울분을 삭이고 살았을까. 초임교사로 발령받아 두 달 만에 경찰서의 시커먼 벽에 갇힌 채 8개월 구금생활을 한 뒤 다시 돌아왔지만 그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노점상을 하던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한 채 아들의 구명운동에 나섰고, 남동생은 이 소식을 듣고 생을 마감했다.

정권에 의해 교사들도 ‘간첩’으로 몰리던 세상이었다. 강 교사는 자신의 죄명을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진술서를 쓰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고.

국가는 학생들을 동원해 교사를 법정에 세웠다. 학부모들에겐 “북침설 교육 교사는 물러가라”고 꼬드겨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하게 했다. 교육 관료들은 잇따라 이 같은 결정을 찬양하는 성명서를 냈다. 언론들도 ‘가짜뉴스’를 연신 보도했다.

89년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3명을 찍어 ‘용공교사’로 내몰았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주도한 조작 사건이었다. 그는 ‘선생님이 6.25전쟁은 미국이 북침한 것’이라고 가르쳤다고 말한 일부 학생들의 거짓 증언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차마 거짓증언을 하는 아이들에게 죄를 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2명의 교사들은 법정에서 ‘무죄’가 나왔지만 학생들의 증언을 반박하지 않았던 강 교사는 징역형을 받게 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교단에 설 수 있었고, 그는 그 세월을 만회하는 심정으로 더 더욱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30년을 기다린 끝에 그는 정년을 얼마 앞두고 재심 청구를 한다. 30년 인고의 밤을 보낸 뒤 비로소 내린 결정이었다.

아직도 전교조하면 ‘빨갱이’라는 굴레가 덧씌워져 있고, 관련 기사 댓글에도 늘 등장한다. 대통령마저 “‘빨갱이’라는 말로 더 이상 민족끼리 싸우고 가르지 말자”라고 외치지만 우리사회에서 ‘빨갱이 상품’은 여전히 잘 팔린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강 교사는 ‘빨갱이 교사’ 댓글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한다. 이 조작 사건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전교조에 덧씌워진 이념의 굴레는 결국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정권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참 답답하다. 보수 정권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한 조작사건들의 피해자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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