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기준을 왜 물질로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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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기준을 왜 물질로 나눌까
  • 충청리뷰
  • 승인 2019.06.0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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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 희 충북여성정책포럼 대표

신록이 짙어가는 6월, 장미꽃들이 담장에 서로 어우러져 피어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런 맑은 아침, 복지관에서는 가족캠프를 떠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로 한바탕 소란스럽다. 그 소란스러움이 사람사는 세상임을 느끼게 해준다. 순간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행복은 주관적인 것 일텐데 사회가 자꾸 기준선을 만드는 듯하다. 비약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하나가 중산층 기준이다. 중산층 기준이 각양각색이다.

프랑스 퐁피두대통령은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으로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며,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과 약자를 도우며 사회에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을 이야기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등이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기준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하며, 책상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을 것을 교육한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 우리의 중산층 기준은 부채없는 아파트 30평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소유, 예금액 잔고 1억원이상 보유, 해외여행은 1년에 한번 이상 다닐 것이 기준이라고 응답하였다.

우리 중산층의 기준이 물질적 기준이라 좀 아쉽다. 소수가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고 다수가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불평등사회에서 중산층이라고 하는 것이 꼭 행복한 수준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좀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은 다른 나라의 공통적인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사회공동체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 혹은 집단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개인적, 집단적 권리를 확인하고 존중하면서 그 권리의 실현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권기반 접근이다. 즉 모든 것의 시발점은 인권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항상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셨다. 어려운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배려하라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 배운 것들이 훗날 사회생활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맺는 첫걸음이 된다. 그것이 곧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만든다. 신뢰사회는 시민들간의 믿음과 소통이 사회적 자본이 되는 사회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집단이기주의 행동을 부추기는 미디어나 경제, 정치, 사회적 권력 엘리트들은 잠재적 신뢰성장성을 갉아먹는 것이다.

토마스페인은 저서 <상식(Common Sense)>에서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정부는 우리의 사악함에 의해 만들어진다. 전자는 우리의 애착을 통합함으로써 행복을 긍정적으로 촉진하고 후자는 우리의 악함을 붙들어 맴으로써 행복을 부정적으로 촉진한다”고 하였다.
개인의 사회적 행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해온 사회의 분위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이 몸에 배는 것이다. 사회생활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특히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더 그렇다. 그 기본선을 지켰을 때 서로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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