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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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이 있는 풍경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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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환(시인·충북작가회의 회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잘 보여준다. 사람이 사람의 의사표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느끼는 절망이란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맛보아야 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늘 속의 인생, 한공주와 홍종두는 서툴지만 가식 없는 말과 몸짓으로 의사를 소통함으로써 서로에게 ‘오아시스’가 되었다. 강간당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였다고 절규하는 공주의 몸짓이 경찰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인간의 언어가 되지 못하는 것을 보며 갑갑증으로 숨이 막혔었는데.

충북도청 정문 앞에는 천막 한 동이 설치돼 있다. 소설가 김해숙 씨(청주역사문화학교 대표)가 청주 원흥이생태공원 부지 확보에 충북도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며 20일째 침묵 단식을 벌이고 있는 농성장이다.

작년부터 해를 넘기며 삭발에 삼보일배, 1인시위 등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두꺼비 서식지 보존 운동을 벌이는 동안 사업주체인 토지공사는 물론 청주시나 충북도가 성의를 갖고 대화에 임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금강유역환경청의 맹꽁이 서식지 재조사를 앞두고 지난 달 19일 포크레인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구룡산 두꺼비 중심 서식지를 파헤쳐 버리는 폭거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지경인데도 충북도는 “몰랐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고 있다.

도무지 사람의 말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토지공사와 모르쇠로 일관하며 ‘역할’을 거부하는 자치단체 사이에서 김씨는 자신을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요구사항 중에 하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대화 창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나마 말할 기운도 없이 침묵으로 절규하는 김씨를 지켜보며 다시 숨이 막힌다.

사창동 충청일보사 앞에 또 하나의 천막이 있다. “도민들에게 충청일보를 반납하라”고 쓴 현수막을 두르고 밤마다 이슬에 젖고 있지만, 공기(公器)인 언론사를 일거에 폐업해 버린 사업주는 들은 척도 안 하는 듯하다. 더욱 딱한 것은, 눈길을 주는 ‘도민’도 없고 거들고 나서는 시민단체도 없다는 것인데. 아마도 ‘반납’받아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진실로 도민들을 위한 오아시스 ‘역할’을 했는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필요할 때 아무나 갖다 붙이고 버리는 ‘도민’이지만 그 민심은 따뜻하고도 차가운 것이다. 나는 바란다. 충북도가 황량한 사막으로 남지 않기를, 끝내 충북도가 도청 직원들이 밥벌이하는 직장으로 그치지 않기를. 각종 지역현안에 대처하는 리더십과 정치력의 부재로 광역자치단체 무용론까지 대두되는 마당에, 혹시라도 충북도청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처했을 때 도민들이 천막을 치고 “불가하다”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진풍경을 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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