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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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리뷰
  • 승인 2019.06.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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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크림슈타인의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김 은 숙 시인

누구나 한 생애를 살면서 자기 의지로 어떤 상황이나 구속에서 빠져나가려는 몇 차례의 탈출을 경험한다. 때로는 물리적 탈출이지만 그보다 전 생애를 통해 더 요구되는 것은 내면적, 정신적 단계의 넘어섬이 아닐까 싶다. 그래픽노블로 발간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책장을 넘기면 먼저 만나는 “한나 아렌트의 세 번째 탈출은 그녀의 삶을 넘어 그녀의 핵심적 사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는 감수를 맡은 김선욱 교수의 말은 핵심적 사상으로 안내하는 탈출이란 게 뭘까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평생을 사유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간 철학자이며,‘전체주의’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20세기 최고의 정치 사상가로 평가되는 ‘한나 아렌트’. 그의 사상을 담은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의 저서는 일반 독자들에게 너무 어려워서 관심 갖고 읽어보려던 이들도 그만 책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는데,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감각적인 그림과 스토리텔링으로 한나 아렌트를 한층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느낌이라 반가웠다.

전 생애를 통해 증명한 사유와 실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등 정치사상사에 중요한 개념들로 우리에게 알려진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밀도 있게 그린 책이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 글·그림 최지원 옮김 더숲 펴냄

전반부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칸트를 섭렵하고 그리스 비극에 빠졌던 성장기, 마르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해서 이후 한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승이자 연인인 하이데거와의 깊이 있는 만남, 두 번의 결혼과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파리로, 다시 뉴욕으로의 목숨을 건 두 번의 탈출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광포한 시대에 위태로운 상황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국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분노와 두려움과 심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공공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 정말 놀라운 사람이었다.

성장기와 위태로운 상황에서의 두 번의 탈출을 담은 삶의 여정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뉴욕 이주 후 정치사상가로서 그의 사상이 궤도에 오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일약 주목 받는 정치사상가로 떠오르게 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대답을 담은 『인간의 조건』,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묘사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의 책들을 내놓은 사상가 한나 아렌트.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인류와 개인에 대한 물음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진정한 지식인이란 무엇인지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며, 사유하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살아있다는 그의 사상은 우리에게 사유하는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아야 할 우리의 ‘탈출’
치열하고 끈질긴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자기극복, 이러한 내면적, 사상적 성숙의 단계를 우리는 몇 번이나 겪어내며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단단해지는 것일까? 인간 본성에 대한 집중적 탐구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인간사회 문제에 대한 탐구,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이론정립은 전문가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개인적인 편견, 합리성이 결여된 사회 통념을 극복하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어쩌면 현재의 자기 영역과 단계를 넘어서 더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사상적 깊이를 더해가는 길을 외면하고 스스로를 방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며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살아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것’이라는 말을 들어 자신의 생의 의미를 만들고 삶의 무늬를 새길 수 있는 사유의 길, 그 단단한 힘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인상적인 문장.
▶살아있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결국 같은 거야
▶사유하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살아있다
▶철저한 사유의 고통보다 순종의 편안함을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악’에 도달할 수 있다. 악은 평범하다.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용서하되 기억해야지. 그것이 역사의 흐름을 뒤집고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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