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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민 이태양씨의 하루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 잊지 못해
신 동 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본지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함께 6월부터 매주 ‘지구를 살리자’라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동참을 원하는 사람들은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cjcb.ekfem.or.kr)나 페이스북에서 ‘지구를_살리는_시민실천_캠페인’,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을 검색하시면 확인할 수 있다.

197*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어느 날 고향집 밤을 잊을 수가 없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해지기 전에 밥을 서둘러 먹고, 호롱불 아래 엎드려 책을 보거나 마실 온 할머니들 이야기를 옆에서 듣다 잠이 들었는데, 전기가 이 칠흑 같은 밤을 밝혀주고 나서부터 많은 것이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전기하면 이태양씨에게 생각나는 것은 변소에 켜진 5촉(5W로 촉은 촉광이거나 촛불을 의미, 과학적으로 환산된 단위가 아니라 우리식 표현처럼 다정하다. 전기가 그렇게 다정한 것이 아닌데,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쓰이지 않는다)짜리 빨간 전구이다.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켜긴 했지만 밝지도 않고, 귀신을 쫓는다는 빨간색 전구 빛이 더 무서웠다. 곳곳마다 좀 밝아졌지만, 호롱불, 남포불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고, 불 끄라는 잔소리는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가을 수확이 끝나야 비로소 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절에 ‘다달이’ 요금을 내라 하니 전기는 그처럼 무서웠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시골의 밤문화, 놀이문화에도 변화가 왔다. 마실 가던 아주머니 할머니도, 정자나무 아래 모여서 놀던 아이들도 이제 밤에는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대신 TV가 있던 집으로 몰려다니면서 주말에는 타잔이나 레슬링을, 주중에는 일일 연속극을 봤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의 대화 주제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어제 봤던 TV였다. 우리 삶과 무관했던 TV가 우리 삶이 되었다.


이렇게 삶에서 TV에 의해 자신들이 쫓겨나 스스로 소외되었고, 그렇게 문화의 주체에서 문화 소비자로 전락했다. 이태양씨는 전기를 타고 온 TV를 통해 다른 세상과 마주했고, 그 세상을 동경하게 되었지만, 전기는 무엇으로 발전되고, 누가 어떤 정책결정과정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지, 왜 발전소와 전기를 쓰는 곳이 멀리 떨어져 초고압으로 송전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었다.


도시에서 본격적인 소비자
보름달이 시리게 비췄던 고향의 그 겨울밤과 달리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 환한 밤들은 묘하게 피곤하다. 도시는 경제성장을 위해, 잉여가치 실현을 위해 24시간 돌아가며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잠들지 않았다.


태양씨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기가*니를 불러 음악을 튼다.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받아 마시고, 공기청정기를 확인하고, 전동칫솔로 텁텁한 입안을 닦고 나서 샤워를 한다. 그리고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깎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주방으로 가 원두를 갈아 커피머신으로 크레마가 풍부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만들고, 후라이팬을 올려놓고 인덕션 스위치를 누른다.

계란 후라이를 만들고, 토스터에 빵 한 조각, 전자레인지에 냉동식품을 넣고, 믹서기에 야채들을 넣고 스위치를 누르고 나서, 어제 밤에 세탁기로 빤 옷을 건조기에 말려 넣어 논 옷냉장고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에너지 시민으로
옷에 구김이 없고, 상쾌한 느낌이 난다. 빵을 한 입 먹고 녹즙을 한 잔 마시고 나서 스마트폰을 켜서 몇 가지 확인한다. 그 사이에 로봇청소기가 혼자서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한다. 그리고 충전이 끝난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 넣고 태블릿을 챙긴다. 18 개의 전자제품이 태양씨의 아침 출근 시간에 동원됐다. 어머니는 저것들 없이도 그 많은 식구들 아침을 해 먹이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무 자동화된 사무실도 이에 못지 않다. 이러다 전기가 잠깐이라도 끊기면 어떻게 될까? 일상생활 뿐만 아니라 교통, 통신, 금융도 전기 없으면 다 멈춰야 한다. 사회관계, 생산관계도 이제는 모두 전기관계구나. 전기 없이 가능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없는 것 같다.


어제 뉴스에서 고압 송전탑 때문에 밀양주민들이 시위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고 큰 소리치던 일본 후쿠시마에선 천재지변이라고 하지만 원전이 터졌다. 우리나라도 원전이 있는데 괜찮을까? 천재지변이라고? 당연히 최악의 경우를 감안해서 지어야 하지 않는가? 무책임하다. 그게 정부가, 전문가가 할 소린가? 그렇다면 난 뭘 할 수 있지?


태양씨는 이제 전기제품을 가능하면 줄이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면 제품사양을 확인해 싼 것 보다는 전기효율이 좋은 것을 산다. 절약은 한계가 있고, 전기를 쓴다는 것이 단지 편한 것만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통 편리와 이익은 내가 지금 여기서 누리는 반면 비용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불하다 보니 나의 비용으로 계산할 수 없다.


내가 지불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지불할 비용이 빠진 상태에서 계산된 가성비는 현실을 제대로 계산한 것이 아니다. 가성비가 합리적 선택을 하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전기의 편익은 내가 여기서 누리지만, 원전의 위험은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 뿐만 아니라 후세들까지 몇 십만 년 동안 감수해야 한다. 미세먼지와 관련이 많은 화력발전도 마찬가지 아닌가? 혼자서 이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힘들어 시민단체에도 가입했다. 그래서 더 바빠졌다.

세상을, 사회를 바꾸기 전까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봤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패시브하우스를 짓고, 태양광발전판을 지붕에 올려 전기도 자급자족하고, 물도 전기이기 때문에 수세식 대신 전통적인 물질순환 방식의 변소로 대신하고, 통이 차면 거름자리에 비우고 풀을 덮어 퇴비를 만드느라 하루해가 짧겠다. 수세식도 전기처럼 물내리는 손잡이 뒤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비용 배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 과정이 보인다면 수세식이 편리하고 깨끗하단 생각을 다시 할 수밖에 없을텐데.

그리고 지난 6월 3일에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도 살펴본다. 살펴보니 민주적 절차도 밟았고, 기본방향이 친환경적이고 잘 잡힌 것 같지만 세부내용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산업계의 책임 등을 더 강조하고 탈핵,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아 아쉽다.

에너지 정의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에너지 전환 기반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시민들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이 없어 에너지 시민의 주권을 어떻게 강화할지 태양씨의 고민은 깊어 간다.

신 동 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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