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인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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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인간의 가치
  • 충청리뷰
  • 승인 2019.07.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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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멘델슨의 『오디세이 세미나』
김 성 신 출판평론가 한양대 겸임교수

『오디세이 세미나』는 미국의 문학평론가이자 고전학자인 대니얼 멘델슨이 쓴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강의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여든을 넘긴 아버지가 아들의 강의를 듣겠다고 나선다. 지난 2011년의 일이다. 책은 완고한 아버지가 고전학자 아들의 강의를 청강하고, 강의가 끝난 이후 부자가 함께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좇는 유람선 여행을 하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우 지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에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아버지의 캐릭터가 참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중산층 미국인이며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컴퓨터 회사에 다니다가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대학 교수까지 된 분이니 말이다. 평생 한집에 살며 자식들을 길러낸 노인. 저자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고지식하고 완고한 사람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이 아버지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가 그런 영웅으로 대접받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는 칼립소와 잠을 잤으니 아내한테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그는 부하를 모두 잃고 형편없는 대장이 되었다. 그는 우울증에 빠져 있고 징징대고 있다. 그는 그저 앉아서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수업을 함께 듣던 학생들이 오디세우스의 영웅성을 높게 평가하는 발표를 하자, 이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으신 것이다.

사실 오디세우스는 영웅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도 따지고 보면 오디세우스의 이미지를 나눠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존재를 아버지는 대뜸 ‘찌질대장’처럼 표현했다. 괜한 심술로 아들의 수업을 훼방이라도 놓으려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들은 아버지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본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는 ‘덕’의 상징적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삼국지』를 거듭 읽다가 보면, 유비가 전혀 달리 보이기도 한다. 가령 말년의 유비는 제갈공명을 불러 자신의 아들 대신 왕위를 물려받으라고 제안한다. 이것은 유비라는 사람의 덕을 잘 표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나 역시 30대의 나이까진 의심 없이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삼국지』를 다시 읽었을 때 나는 전혀 반대의 해석을 했다. 어쩌면, 유비의 꼼수였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오디세이 세미나 대니얼 멘델슨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오디세우스를 두고 ‘그는 그저 앉아서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오디세이 세미나』의 아버지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는 신화 속 캐릭터라기보단 현실의 인간이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신화 속 인물에게 단순히 감정이입을 해보는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로서 배역 그 자체가 되는 '메소드 연기‘와 같다고 할까.

저자의 완고한 아버지는 이런 의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저 말을 통해 저자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메시지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나는 그저 앉아서 죽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을 것이다. 너도 그러하길 바란다’

16주간의 대학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어떤 식으로든 부모와 불화의 시기를 겪는다.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는 자라난 시대가 달랐고, 살아간 환경이 달랐으며, 관심이 달랐고, 그렇게 모든 것이 달랐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며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여행 중 폐소공포증이 있는 저자가 동굴로 내려가길 겁내자 아버지가 손을 잡는다. 아들은 아주 어렸을 때 이후 아버지가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곧이어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자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가는 걸음마다 함께 있으마. 정 싫으면 우리가 같이 그만두고 돌아가자”

아들은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아버지의 마음을, 그 깊은 사랑을, 생전 처음으로 느낀다. 아들은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버지가 ‘이타카’ 강의에 대해 나에게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듣고 싶어 했지만 듣지 못했던 말이다. ‘너 참 잘했다, 댄’”
『오디세이 세미나』는 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게 감동적인 에세이다. ‘세미나’라는 제목만 보고, 재미없는 학술서란 오해는 부디 하지 마시길. 제목만 저렇지 않았으면 30배쯤 더 팔려나가고 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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