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규범을 보는 우리의 눈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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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규범을 보는 우리의 눈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한 자산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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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교수·미국 Yale대학 Fulbright 교환교수 )
   
영국에 유학을 할 때는 한국의 역사적 유산이 너무나 많이 사라졌다고 느꼈었다. 600년 가깝게 지속된 왕조를 두 번이나 거친 나라치고는 남아 있는 게 너무도 없다고 느꼈었다. 영국이 워낙 전통을 존중하고, 건물이나 유적지를 잘 보존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반사적 안타까움 같은 심리였다.

영국에서 일요일 열리는 벼룩시장엘 가보면 200-300년 된 가구나 동전, 기타 물건들을 즐비하게 볼 수 있다. 요크(York)나 바스(Bath)같은 도시는 로마 시대부터의 도로 구조와 유적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석조건물로 지어진 성당과 저택들은 400-5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기 일쑤이다. 밀튼킨즈 라는 신도시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필자의 눈에는 쾌적하기 짝이 없게 지어진 것으로 보였지만 정작 영국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역사의 이끼가 끼지 않은 새 건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귀국 후 필자는 한가한 시간이 날 때마다, 역사적 향취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경주, 공주, 부여, 그리고 깊은 산 속의 절까지 많이 돌아다녀 보았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는 민족적 숨결, 혹은 우리가 기댈 언덕 같은 것을 타?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안타까움으로 우리의 도시와 삶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의 애달픔은 컸다.

공주나 부여는 사실상 백제의 고도로서의 모습은커녕 흉측할 정도의 무계획, 혹은 저개발 된 상태에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난 후 느낀 안타까움은 차라리 백제시대에도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느낌 그 자체였다. 서울의 인사동도 마찬가지였다. 인사동에 전시되어 있는 전통공예라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그나마도 절반 정도가 인도나 중국에서 수입해 온 골동품들이고, 나머지는 국적을 알 길이 없다.

전통의 사장(死藏)과 죽음은 오늘날 우리네 일상의 생활에까지 그대로 연장되어 있다. 서울이나 청주, 대전의 거리를 연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도시에 나무와 공원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더욱 견디기 힘든 풍경은 전통이 축적되지 않는 모습이다. 건물들은 20-30년만 가도 노후한 건물로 간주되고, 우리의 건축양식이나 문화 같은 것은 느낄 방도가 없다. 온 도시가 일회용 인스턴트 같은 시멘트 건물로 가득 차 있다.

필자는 어릴 적 유년 시절을 충북의 청원에서 보냈다. 사실, 나의 전통에 대한 그리움과 존중은 어릴 적 청원에서 체득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당을 하시던 증조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문을 가르쳐주셨고, 옛 것의 소중함을 아예 뼛속에 심어주셨다. 저녁마다 마을에 울려퍼지던 할아버지의 시조 읊으시는 소리는 지금도 나에게는 돌아가고픈 이상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히, 옛 것은 나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다.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어제 아미쉬(Amish) 마을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미쉬 마을은 종교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착촌이다. 전통적 삶의 방식을 고수하느라 이들은 기계문명을 거부하며, 전기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한다. 이들은 정직하고, 친근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정평이 나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필라델피아엘 들렀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데, 이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관광거리는 자유의 종(Liberty Bell)이었다.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길게 장사진을 치고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정작 자유의 종을 보는 동안 나의 마음은 ‘우리 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자유의 종은 그 크기나 예술성, 기능에서 우리의 에밀레종이나 속리산 법주사 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볼 품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 역사적 의미 하나로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몰려와 둘러보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 적은 것이 아니라, 전통을 보고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어제가 없다면, 오늘은 존재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다. 더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전통과 규범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뿌리 뽑힌 자’들이 근본없는 삶을 영위하고, 난폭한 인생을 활개 치는 법이다. 21세기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 건설을 위해, 전통과 규범을 보는 우리의 눈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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