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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발 경제전쟁과 역사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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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발 경제전쟁과 역사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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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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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포성은 일본에서 먼저 울렸지만 장기전 예고

지난 7월 1일 한·일 ‘경제전쟁’이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했다. 과거의 전쟁이 전통적인 땅따먹기식의 영토전쟁이었다면, 현대의 전쟁은 영토전쟁과 경제전쟁의 혼합전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의 원인제공이 한국이냐, 일본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전쟁을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정치에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느 국가의 힘이 더 강하냐에 달려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명분은 사라지고, 누가 힘이 더 강한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된다. 전쟁을 하는 한·일 당사국은 힘든 일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접국가들이나 세계 다른 여러 나라들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본과의 주요 사건 두개를 조명하면서 이를 현대적 글로벌시대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결과
1. 현재로부터 427년 전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때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조선에게 명나라를 쳐들어가려하니 길을 빌려달라는 구실로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고, 이들 군대는 동래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20여일만에 한양을 점령해 버렸다. 이에 선조는 평양성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서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 일본군에 대항한 우리 관군은 그동안 아무런 준비없이 세월만 보낸 탓으로 싸움 같은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다.

이 같은 패전 상황을 보고 있던 민초(民草)들과 의(義)로운 애국자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던져 분연히 일어섰다. 이들에는 의병, 승병이 있었고, 의(義)로운 지식인들이 있었고,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이 같은 전쟁을 하면서 수많은 백성들이 죽었고, 백성들은 수많은 재산을 약탈당했고 수많은 부녀자들이 능욕을 당했고, 그야말로 온 국토는 쑥대밭이 되었다. 당시 전쟁을 겪으면서 일본군이 우리 백성들에게 얼마나 악랄했는가에 대하여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교토에 가면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적지가 있다. 조선 사람들의 코와 귀를 베어가서 묻어 놓은 귀무덤(耳塚)이 있다. 그것은 당시 일본의 통치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이니 조선 사람들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서 보내라’고 하는 상상하지 못할 악랄한 명령을 내려 일본 군인들이 우리 군인들과 민간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코와 귀를 베어 일본으로 보내어 만든 무덤으로 현재는 유적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들은 이 무덤을 관광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2. 현재로부터는 143년 전이고, 임진왜란 이후 284년이 지난 1876년 2월 강화도에서 일본은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에 의해 조선의 주요 항구를 일본에 개항하도록 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전초단계였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우위를 확보하였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조선에서 배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04년 2월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1905년 7월에는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태프트밀약을 맺어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의 조선에서의 지배를 인정하였고, 1905년 8월에는 영일동맹을 맺음으로써 영국과의 관계에서 일본의 조선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였다.

1905년 11월에는 일본은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노들을 매수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조선의 외교권을 행사하는 을사조약을 체결했고, 1907년 10월 일본은 조선경찰을 일본경찰에 통합하였다.

우리나라 지배세력의 역할은
일본은 우리나라를 개항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당시 미국·영국·청나라·러시아 등과 외교협상 또는 전쟁을 통하여 세계열강들로부터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하였고, 그 당시 우리나라 지배세력들을 때로는 힘으로, 때로는 협박으로, 또는 당근과 채찍으로 매수하여 외교권·군사권·사법권·경찰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10년 8월 한일병탄을 강행함으로써 국권을 침탈하여 그로부터 36년간 한국에 대한 식민지시대를 열었다.

임진왜란 이후 427년, 한일병탄 이후 143년이 지난 2019년 현재,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바른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또는 현재 우리나라 지배세력들은 바른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짧은 지면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행정부가 과연 바른 국가관을 가지고, 바른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국가를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국정을 운용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2019년 7월 1일 일본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규정을 개정하여 스마트폰과 TV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소재 등 세 개 품목을 7월 4일부터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규제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이다. 현재까지는 일본 업체가 우리나라 기업에 자유롭게 수출했지만, 7월 4일부터는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산업성은 이번 조치의 이유에 대하여 ‘양국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의 주요 통신들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일본 정부가 한국에 적용해온 화이트국가 리스트(White Country List)에서 제외시켜 안보를 이유로 통신기기와 첨단소재의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한일 경제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경제전쟁의 포성은 일본에서 먼저 울렸고,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변명과 남의 탓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심지어 내년 총선에 대비한 친일프레임전략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단순한 루머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황 신 모
전 청주대 총장 ·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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