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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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은 강하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07.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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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로마·밀라노·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기행
가는 곳마다 관광지, 보는 것마다 문화재…역사 보존에 놀라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

지난 10~20일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기행을 다녀왔다. 베네치아·베로나·밀라노 등의 북부지방과 로마·피렌체·시에나 등 중부지방을 둘러보았다. 그 중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씨를 뿌렸고 로마·밀라노·베네치아는 꽃을 피운 도시라서 특히 관심이 갔다.

몇 천년 동안 보존해온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화유적과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가는 곳마다 관광지이고, 보는 것마다 문화재였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전세계인들이 줄서서 문화감상 하는 것을 보고 물질과 바꿀 수 없는 문화의 힘을 절실히 느꼈다.

르네상스의 본고장 피렌체 
 

피렌체 두오모성당에서 내려다 본 시내 모습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말한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사상·예술을 본받아 인간중심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한 정신운동이라는 사전적 해석이 뒤따른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리고 근세로 접어들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돼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르네상스를 시간적, 지역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통상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이탈리아 국가공인 건축사인 정태남은 ‘이탈리아 도시기행’이라는 책에서 “1300년대 초반 피렌체는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였다. 무려 40개의 은행들이 있었다. 당시 피렌체는 로마제국 이래 처음으로 최대의 건설붐을 맞았다. 이 때 예술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해 다음 세기에 르네상스의 꽃이 만발하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고 썼다.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작품을 보려면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책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이탈리아로 가자마자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피렌체 미술을 보기 위해서 였다.

피렌체는 형식상 공화국이었지만 실제로는 3대째 메디치 가문이 통치하는 세습 군주국가였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상업으로 부를 쌓았고 교황청과 거래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코지모 1세는 유럽 16개 도시에 은행을 설립해 재산을 늘렸으나 피렌체 공화국 발전에 기여해 ‘국부’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들은 대를 이어 350년간 부를 누렸으나 예술가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저 유명한 미켈란젤로를 메디치 가문 저택에 살게 하고 막강한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것.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우피치미술관의 작품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양미술사 책에서 봤던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실제 거기 있었다. 이 곳은 르네상스 회화를 모아놓은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꼽힌다. 1584년에 설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총 45개의 관에 2500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으니 이걸 다 보려면 다리가 아프다. 그래서 그런지 복도에는 긴 의자가 중간 중간 놓여 있었다.

우피치미술관은 처음에 코지모 1세의 사무실로 지어졌으나 후에 예술작품들을 전시하면서 미술관이 됐다. 우피치(Uffizi)의 어원은 사무실(office)이라고 한다. 안나 마리아 루도비코라는 메디치 가의 상속녀는 1737년 우피치미술관을 피렌체 시에 기증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잦은 홍수에도 2층과 3층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들이 보존되었고,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술관은 1737년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곳에는 14~16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회화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바로크·로코코 양식의 작품, 독일과 플랑드르의 북방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도 있다. 이 미술관 입구에 있는 메디치 가문 인물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동상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4개의 시대가 공존하는 곳, 로마
 

피렌체에는 세례자 요한 세례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종탑 등 종교의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이 있다. 그 중에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라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두오모 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 작품이다. 쿠폴라는 돔과 같은 형식의 둥근 천장을 말한다. 티켓을 예약한 덕분에 30여분 줄 선 뒤 들어갈 수 있었다. 공항처럼 가방검사를 마친 뒤 463개에 달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내 성당 맨 꼭대기에 이른다.

피렌체 두오모성당

계단은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고,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면 구석으로 비켜서야 한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통로가 분리돼 있어 그 과학적인 설계에 깜짝 놀란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과연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이 성당 앞에는 기베르티의 작품 ‘천국의 문’까지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았다. 부근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나라의 언어가 들렸다.

로마는 역시 로마였다.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모습은 없을지라도 그 역사는 살아 있었다. 건축가 정태남은 책 ‘이탈리아 도시기행’에서 로마를 이렇게 표현했다. “로마는 지구상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로마에는 크게 4개의 시대가 공존한다. 대략 1200년 동안의 고대 로마, 1000년 동안의 중세 로마, 300년 동안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로마, 그리고 이탈리아 통일 후 150년 동안의 현대 로마가 있다.”

그래서 하찮은 골목길이나 버려진 듯한 돌무더기에도 오래된 얘기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실제 시내버스를 타고 로마시내를 가로질러 가는데 문화유적지로 보이는 건축물들이 꽤 많았다. 한 부분이 무너져내린 건물들에서는 오랜 역사의 향기가 묻어났다. 그 만큼 볼 게 많았다.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팔라티노 언덕, 캄피돌리오 언덕, 판테온,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박물관, 트레비분수, 진실의 입 등.

로마의 판테온 신전

이 대목에서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보존했는지 저절로 되돌아보게 된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에서 성당같은 큰 건물을 신축할 때 건축가를 공모했다는 대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400년대에 벌써 공모제가 있었다니.

원형극장 콜로세움은 높이가 대략 50m 정도라 웅장했다. 오래된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관광객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이 극장을 보고 놀라는 것은 건축 방식이다. 외벽에는 각 층마다 80개의 아치가 있고, 1층 아치는 출입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출입구에 번호가 있어 당시 관중들은 입장권 번호와 맞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다. 동시에 5만명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데는 15분이 걸리지 않았다니 대단한 건축기법 아닌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 내부

작품 ‘최후의 심판’과 ‘아테네학당’
 

바티칸박물관과 베드로 대성당으로 간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바티칸박물관은 실로 대단했다. 바티칸궁에는 총 1400여개의 방들이 있고 이 중 몇 몇의 방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곳은 티켓을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일행들은 이어폰으로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녔다. 여러 무리들이 물결처럼 움직여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박물관 내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는 또 어떤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환갑이 된 그가 교황 바오로 3세의 명을 받고 완성했다고 한다. 6년 동안 14m에 달하는 벽면에 매달려 391명의 군상을 그린 뒤 몸이 엉망이 됐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한국인 가이드는 “처음에는 그림 속 사람들이 모두 나체였는데 교황이 불경스럽다며 가리라고 해 미켈란젤로 제자가 덧칠했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3대 화가중 한 명인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도 보았다. 약 60여명의 아테네 철학자들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림이다. 각 철학자들의 특성을 암시해주는 재치있는 인물 표현과 구도, 원근법, 웅장한 배경묘사 등이 조화를 추구하는 르네상스 양식이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건축 책임을 맡았고 사후 베르니니가 완성한 베드로 대성당은 우선 규모에 압도당하고 내부의 화려함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예술작품이 있었다. 바로크풍의 모자이크와 거대한 조각작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 ‘피에타’도 있다. 교황의 교회로 쓰이고 있어 세계 각국에서 오는 성지순례단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다. 박물관과 성당을 둘러보고 나니 얼마나 다리가 아픈지 힘들었다. 그 만큼 넓고 크다.

라파엘로의 작품 '아테네학당'

아름다운 섬 베네치아
 

북부의 베네치아·밀라노도 참 아름다운 도시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시내는 걸어다닌다. 골목이 매우 좁다. 배를 타고 갈 때 양쪽에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잃는다. 석양이라도 질라치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120개의 작은 조각섬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180개의 작은 운하가 있는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원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자연을 그대로 살려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베네치아는 한 때 바다로 진출해 힘을 키웠고 15세기에는 지중해 동부를 장악해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리알토 다리는 오늘도 관광객들 천지다. 다리를 따라 양쪽에는 상점들이 있고 다리 가운데는 볼록 솟아있다. 이 도시의 중심인 산 마르코 광장에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버티고 있다. 최대 6명까지 탈 수 있는 작은 곤돌라는 좁은 골목까지 샅샅이 들어갔다 나오며 도시를 구경시켜 주었다.

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무라노섬으로 간다. 982년에 유리공장이 세워지면서 유리공예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곳이다. 이 기술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썼다고 한다. 공예가들의 크고 작은 작업실, 박물관, 공장, 상점 등이 즐비하다. 작은 반지부터 큰 작품까지 판매한다. 영롱한 유리작품들이 아름다웠다.

한편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베로나는 원형경기장 아레나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얘기가 전해지는 줄리엣의 집이 유명하다. 아레나는 기원후 30년경 혹은 1세기 중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에는 시민들이 검투사 시합을 즐기던 곳인데 지금은 야외 오페라의 성전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일행들은 지난 17일 발레 공연 ‘Roberto Bolle and Friends’를 보았다. 늦은 여름밤 야외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특별했다. 3만여명이 들어가는 원형경기장은 어느 쪽에 앉아도 잘 보이는 구조다.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다면 베로나에는 스칼라 가문이 있다. 이 가문의 칸그란데 1세는 베로나의 정치적 위상을 최고로 높였고 유명한 예술가들과 문인들을 베로나로 불러 들였다 한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도 스칼라 가문의 보호로 3년 동안 살았다. 단테는 9살 때 본 베아트리체에게 완전히 마음을 뺏겼으나 서로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단테가 죽기 전에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서사시 ‘희곡’을 남겼는데 후에 ‘신곡’으로 불렸다.

이 작품이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중세 때 인간은 오직 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이 사랑을 통해 단테를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의 감정이 중시됐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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