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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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아
  • 충청리뷰
  • 승인 2019.07.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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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김 은 숙 시인

친구여. 자네가 만약 사람들 가운데 살고 싶다면, 부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물론 자네가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 『그림자를 판 사나이』끝부분
지난 4월에 출간된 김영하의 산문집『여행의 이유』를 읽는 중에 잊고 있던 작품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다시 읽어보려고 서가 구석구석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생각나니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다시 구입하자마자 단숨에 읽어갔다. 오래전에 읽은 책을 왜 그렇게 간절히 다시 읽고 싶었을까? 바로‘그림자’때문이다. 주인공 슐레밀이 ‘회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판 그림자는 과연 무엇인가 지금 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다.

당신의 그림자를 사고 싶어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뒤 표지에는‘현실과 허구의 구분을 해체시키는 세련된 문학기법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을 미리 예견한 19세기 독일문학의 수작’이라는 평가가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말 속에 담긴 막강한 자본의 힘과 그 이면에 드리워진 깊고 커다란 그늘을 미리 짐작하며 책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주인공인 슐레밀은 항구도시에 도착하여 자신에게 있는 가장 멋진 옷을 입고 토마스 욘씨의 별장을 찾아간다. 욘씨와 함께 정원을 산책하던 사람들 속에서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는 슐레밀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자신에게 팔라고 예의를 갖추어 제안한다. 짐작하듯이 그는 악마이다.

그림자를 판 대가로 금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자루를 받은 슐레밀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니 사람들은 쉽게 그를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지만, 그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알면 모두 등을 돌리고 경원시한다. 일하지 않고도 부귀영화를 누리나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지도 행동이 자유롭지도 못한 슐레밀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된 슐레밀 앞에 다시 나타난 악마는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영혼을 팔라고 제안한다. 그림자는 바로 돌려주고 영혼은 죽으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제 그림자를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슐레밀은 악마의 두 번째 제안은 거절한다.

심지어 그림자를 판 대가로 받은 금화 주머니마저 깊은 물속으로 던져버리고 목적지 없이 먼 길을 떠난다. 방랑 중에 어느 마을 장에서 낡은 장화 하나를 구입하는데 그 장화는 한걸음에 7마일을 날 수 있는 신기한 장화였다. 이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여행자이며 방랑자로서 자연을 탐구하며 여생을 보낸다.

그림자를 돌아보는 시간
이 작품에서는 먼저 거래를 제안하는 악마의 말과 태도를 주목하게 된다. 그림자를 팔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하거나, 품위 있게 살고 싶은 당신의 욕망을 이루는데 그림자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끝없이 나오는 금화자루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게 아니라,‘당신의 소중한 그림자에 대해 제가 아무리 높은 가격을 치더라도 부족할 것’이라며 금은보화보다 그림자가 더 가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나에게 팔겠느냐고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제안하는 게 더 무섭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최문규 옮김 열림원 펴냄

선택은 인간의 몫이며 그래서 책임도 그에게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존재와 부자로 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슐레밀은 욕망을 택한다. 막강한 자본의 힘에 대한 욕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을 19세기에 이미 예견한 듯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림자가 없으면 어떤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걸 깨닫고 영혼을 팔라는 두 번째 제안은 거절하고 차라리 그림자도, 돈도 없이 떠도는 삶을 택하는 후반부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인간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그림자는 무엇일까? 사람다움을 입증하는 존재의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다움은 무엇이며 누가 규정하는가? 사람다움은 사람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존재와 더불어 작동하는 관계망이 아닐까 싶다.

각 존재의 출발점인 부모를 비롯한 가족, 성장하면서 형성되는 생각의 틀과 내적 가치, 사회적 가치와 규범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그림자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존재하므로 따라서 사람다움이라는 것도 그가 속한 사회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누구나 존재와 동시에 형성되며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그림자, 그 그림자의 깊이와 크기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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