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야시장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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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야시장을 제안하며…
  • 충청리뷰
  • 승인 2019.08.0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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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참으로 열받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 열대야가 고통스럽고 저녁 뉴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베 일본 총리를 대하는 것도 그렇다. 원래 균형잡힌 인상은 아니지만 그가 수출규제에 따른 한국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쿠라’를 보는 것같아 역겹기까지 하다.

이럴 때 간절해지는 것은 밤 시간에 찾을만한 공간이다. 더위도 식히고 잠시 시름을 잊기 위해서다. 사실 요 며칠, 잠 못이루는 밤이 계속되면서 어디로 탈출하고 싶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무심천 광장도 나가보고 근처 걷기길도 찾아보지만 신통치가 않다. 청주 어디를 머리에 떠올린다고 해도 “그래, 바로 그 곳이야!”하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6일 포항에서 영일만친구 야시장이 오픈하고 첫날부터 대박을 쳤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개장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연일 북적거리면서 포항의 새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봐도 야시장의 먹을거리가 그야말로 먹음직스럽다. 요즘같은 열대야에 이보다 더 열을 식힐 수 있는 곳도 없는 듯하다.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있는 포항이기에 갈곳 많은 이 곳 시민들이 부럽기만 하다.

사실 포항의 영일만친구 야시장은 대구 서문시장의 야시장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컨셉’이 거의 동일하게 느껴진다. 전국 재래시장 중에서 대구 서문시장만큼 많이 알려진 곳도 없다. 무슨 선거가 있을 때마다 비중있는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찾아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원래 이 곳은 지역색이 강한만큼 남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데 요즘에는 정치인이 아니라 야시장으로 서문시장이 한없이(?) 뜨고 있다.

얼마전 작심하고 찾아간 서문시장 야시장은 마치 신천지와도 같았다. 지역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던 전통시장 활성화를, 비록 밤에 국한된 것이지만 이 곳에서 유감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분위기의 흥청거림은 물론이고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같이 뒤섞이는 자체가 장관이었다. 간혹 외국인들과 맞닥뜨릴 때는 몇해 전 세계 모든 인종들의 전시장처럼 느껴질 만큼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겼던 베트남 호이안의 야시장을 떠올리게 됐다. 야시장 하나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대구 서문시장 야시장도 이에 못지 않다. 방문객들의 절대다수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오는 외지인들이었다. 인근 포항과 경산, 영천, 경주 등에서 찾아온 이들이 특히 많았다. 이번 포항 영일만친구 야시장 개장 소식을 접하면서 대구 서문시장 야시장을 모방한 것이라고 확신한 것도 당시의 기억 때문이다. 그 때 포항에서 가족이 총출동해 왔다는 사람에게 물으니 “포항에도 갈 곳이 많지만 서문시장은 각별한 느낌이어서 가끔 온다. 특히 아이들이 성화다”고 답했다.
서문시장 야시장은 2016년 6월 개장했다. 저녁마다 총거리 350m에 80여개의 매장이 들어선다.

원래의 시장 점포들이 문을 닫는 저녁 7시부터 밤 11시 내외로 운영되는데 등장하는 먹을거리가 개(접시)당 5000원 내외이지만 하나같이 구미가 당긴다. 운영측에선 글로벌 퓨전음식을 천명하는데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길 수 있다. 야시장이 열리는 동안 상설공연이나 버스킹, 미디어 파사드까지 선보여 그야말로 여기는 매일 밤이 축제장이다.

가장 큰 특징은 매장 주인들이 대부분 2, 30대 젊은이라는 것으로, 이를 청년창업으로 인식할 땐 충북의 현실과 비교돼 배가 아플 정도였다. 청주에도 북부시장 등 재래시장 곳 곳에 국가와 지자체 정책사업으로 청년창업 취지의 매장들이 들어섰지만 얼마되지 않아 개점휴업내지 폐쇄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매장의 시설로는 청주가 레스토랑이라면 서문시장은 인력거를 사용하는 포장마차 수준인데도 성황은 이렇듯 차이난다.

대구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곳을 더 언급하려 한다. 김광석 거리다. 워낙 언론을 많이 탄 명소로 인식되었기에 대개는 규모가 큰 무슨 타운 쯤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가 보니 너무나도 작고 서민적이고 음전했다. 대구 시내를 가로지르는 신천이라는 하천을 낀 도로의 시멘트 벽에 이 곳 출신 김광석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고 약간의 조형물을 설치한 게 전부다.

대구 서문시장 야시장

다시 말해 폭 3.5m에 350m 길이의 시멘트 둑방길을 걷는 게 김광석 거리의 관광인 것이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조성된지 9년이 지나 다소 시들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말이면 하루 5천~1만여명이 찾는 대구의 최대 관광명소다. 이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들려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잘 모른다. 당연히, 방천시장으로 상징되는 주변 상가는 이 김광석 거리로 먹고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무슨 사업만 했다하면 우선 때려부수고 새로운 것만 지으려는 우리지역의 현실, 특히 옛 연초제조창이 과거의 흔적과 역사가 사라진 채 오로지 현대식 시설로 변모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여, 이참에 청주에도 전국 명소가 될만한 야시장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작금의 열대야에 더욱 더 간절해지는 청주만의 야시장 말이다. 요즘 한창 부각되고 있는 청주시 운천동 운리단길을 추천한다. 직지의 산실인 이 곳에 현재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미 특색있는 거리로 젊은이들 사이에 조금씩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 카페나 공방 그리고 각종 인문학적 공간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주변의 기존 가게들도 야간시간대에는 대개 철시하기 때문에 큰 갈등도 없을 것이다.

도로와 인도의 폭도 넉넉하다. 만약 직지 야시장이 현실화된다면 세계적인 직지문화 특구를 대내외에 알리는 데도 이보다 더 좋은 계기가 없을 것이다. 못할 것도 없다. 청주시가 아파트만 짓는데 골몰하지 말고 이런 고민을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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