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는 곧 폐기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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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사회는 곧 폐기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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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8.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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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체제, 사회 전체를 ‘표준화’하고 말아
신 동 혁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요즘 밥 한 끼, 6000 원이면 감사하고 보통 7000~8000원을 내야 먹을 수 있다. 식당에 들러 주문하고 먹고 나서 숟가락 놓고 계산하고 돌아서면 끝이다. 거기에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라도 주고받으면 좋겠지만 서로 바빠서. 그래도 인사가 오가면 그것은 자기 삶의 품위를 스스로 더하는 것이다.

어디 밥(재화)뿐인가? 대표적인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관람도 밥 사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좋아하는 메뉴 고르듯 취향에 맞는 연극 찾아 극장가서 표를 사서 관람하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돈과 어디서 살 것인지 지역을 정해서 소위 매물을 둘러보고 사면 된다. 액수가 커서 권리(소유권)에 대한 보장이 추가로 있지만, 그 과정(용역) 또한 돈 주고 사면 그만이다. 이것은 일상의 흔한 모습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거래들은 돈을 건네주고 그에 상응하는 ‘것’(상품 또는 용역)을 받았기에 등가교환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거래다. 이것이 전부라면 이 거래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등가교환의 세계인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 거래가 보여주고 있는 등가교환은 겉모습에 불과하고, 실체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비롤 통해 욕구 충족
문제는 이 민주적인 등가교환이 가리고 있는 ‘소비사회’이다. 이 소비사회의 소비는 이전부터 존재한 소비와 다르다. 이전 사회가 보여준 소비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표준화할 필요성이 없었으며, 오히려 소비를 통해 차이를 두드러지게 했고, 노동과 생산과정과 통합되어 있었다.

반면 대량생산체제는 ‘차이’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통해 사회 전체(삶의 양식, 의식)를 ‘표준화’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소비사회의 물적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소비사회의 소비는 노동, 생산과정과 분리되어 있어 생산의 생생한 과정을 우리 눈앞에서 없애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센터에 가면 그 많은 상품을 볼 수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알 수가 없다. 오직 균질화된 가격만을 보고 소비를 강요받는다.

보통 필요성 때문에 우리는 물건을 산다고 여긴다. 그래서 필요가 충족되면 더 이상의 소비는 ‘필요’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필요가 충족되었음에도 소비가 계속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소비의 목적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필요뿐만 아니라 욕구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비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사실 필요와 욕구의 경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와 역사에 따라 가변적이다. 승용차가 한 예이다. 과거에는 욕구충족, 과시적 소비라고 했지만 이제는 사회적 삶의 조건이 변해 승용차는 삶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필요와 욕구를 이처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면 욕구 충족을 문제 삼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욕구는 무엇이고 그 욕구는 나의 내재적 특성인지, 아니면 외부에 의해 주입된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욕구가 자본에 의한 외부로부터 나도 모르게 주입되었다면, 그로 인한 소비는 나의 욕구 충족이 아니라 이윤획득이라는 자본의 욕망 실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욕구가 외생적인 것이든 내재적인 것이든 과연 물질 소비에 의해 충족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비가 삶의 주된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리고 나서부터 우리는 삶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가 삶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보면 소비와 관련된 내용이지 삶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소비하여 삶을 꾸려 나간다. 그래서 이 시대는 우리를 ‘소비자’로 부른다.

상품에 의해 결정되는 삶
우리를 소비자로 호명한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소비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해 가고 있다. 대형매장에 가보면 소비영역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이제는 짐작조차 하기 쉽지 않다. 예전에는 김치를 사 먹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김치는 일상의 영역이고, 주부의 권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낡은 교조가 된지 오래되었다. 밥도 즉석 용기밥을 사 먹는 시대이다. 어디 냉장식품뿐인가? 출생부터 사망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쇼핑센터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일상과 삶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주권과 결정권이 나에게서 시장으로 이동했고, 이로 인해 내가 삶을 사는데도 내 삶의 내용이 쇼핑몰의 상품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소비사회이다.

소비사회는 성장과 이윤획득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사회는 소비와 노동생산과정을 분리시켜 나의 소비가 생산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이 무지로 인해 나는 나의 소비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소비는 폐기물을 대량으로 양산한다. 그렇지만 이 폐기물 처리과정 또한 나의 소비과정과 분리되어 있어 이 과정이 사회와 삶의 조건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자본의 이윤에 대한 무한증식 욕망은 전지구를 무대로 활약한다. 이제 자본은 지구를 같은 시간대에 누비고 다니는 광통신망을 타고 툰드라지대의 욕망과 사막 유목지대의 욕망을 ‘통일’시켰다. 개인간, 사회적 자연적 조건의 차이를 뛰어넘는 대량소비는 상품을 대량으로 폐기한다. 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는 이제 우리와 지구를 폐기물로 뒤덮을 것이고, 우리의 욕망은 그 폐기물에 의해 폐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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