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대사’ 테마공원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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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대사’ 테마공원까지 등장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08.08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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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지난해 55억원 투입해 완공
일부에선 “너무 신격화했다”비판도

신미대사는 누구인가
보은군 스토리텔링 사업나서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 속리산국립공원에는 신미대사를 주인공으로 만든 공원이 있다. 보은군은 전체 공사비 55억원을 들여 2016년 10월부터 ‘훈민정음 마당’ 조성 사업을 했다. 속리산국립공원 내 ‘고향의 강 정비 사업지’인 달천 변에 3만 1740㎡ 규모의 ‘훈민정음 마당’을 지난해 11월 준공했다.

보은군이 조성한 신미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원 모습. 보은군은 전체 공사비 55억원을 들여 ‘훈민정음 마당’ 조성 사업을 하고 지난해 말 개관했다. 신미대사 동상뿐만 아니라 관련깊은 인물들 또한 동상으로 등장한다. /사진=육성준 기자
신미대사와 제자 학조의 부도탑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박소영 기자

이곳은 ‘훈민정음 마당’ ‘신미대사의 마당’, ‘정이품송 마당’ 세 가지 테마로 꾸며져 있다. ‘훈민정음 마당’에는 30관 규모의 종각을 중심으로 세종대왕과 신미대사, 효령대군, 수양대군, 세자(문종), 안평대군, 정의공주 동상 7개가 들어섰다.

입구에는 관람객들이 이색자전거(자칭 어가)를 타고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어가는 이용료는 7000원이다. 곳곳에 포토존을 설치했다.

보은군은 속리산 복천암에서 입적한 신미대사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이곳에 ‘훈민정음 마당’ 조성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신미대사의 마당’에는 거대한 신미대사 좌상을 비롯해 신미대사와 관련 있는 인물들의 동상을 세우고, 궁궐 출입도 등을 설치했다. 한마디로 신미대사의 스토리를 가지고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는 신미대사와 관련있는 인물인 이행(신미대사 외조부)·김훈(신미대사 아버지)·정부인 여흥 이씨(신미대사 어머니)·김수온(신미대사 동생)·함허당(신미대사 스승)·선사학열(신미대사 제자)·선사학조(신미대사 제자)·수미 동상도 세웠다.

‘정이품송 마당’에는 세조의 동상을 세우고, 37년 된 정이품송 후계목을 심었다.

보은군 관계자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산파역할을 한 신미대사와 보은의 연계성을 부각해 보은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는 한편 관광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훈민정음 마당’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보은군은 또 세조대왕과 정이품송에 얽힌 설화, 신미대사가 <석보상절>간행에 기여하고 <월인천강지곡>의 저자이자 속리산 복천암에서 입적할 때까지 한글창제에 크게 기여했다는 스토리를 공원 곳곳에 기록해 놓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왜곡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른바 보은군의 ‘훈민정음 공원’ 또한 네티즌들의 입줄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원 곳곳에는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암시돼 있다.

이런 기록물은 물론이고 조형물 등 공원의 구성 자체가 전체적으로 조악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역의 문화기획자 모 씨는 “55억원을 들여서 조성했다고 해서 일부러 가봤는데 너무 내용이 없었다. 복천암에 가면 실제 신미대사와 제자 학조의 부도탑이 있는데 이를 재현해 놓은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굳이 가짜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보은군민 모 씨는 “군수가 3선을 하면서 곳곳에 군수의 이름을 남기려고 하는 것 같다. 훈민정음 공원에도 돌에 군수의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기념사에서 “‘훈민정음 마당’은 기존에 조성된 한글관련 공원과는 차별화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인물 중심의 테마공간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훈민정음 창제의 숨은 주역인 신미대사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역사의 중심에 ‘보은군’이 있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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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역사인물’로 2010년 신미대사 선정
당시에도 논란 일어…선정사업 지금은 중단
민덕식 박사 “신미는 불교계의 큰 스승이다”

 

신미대사는 2010년 충북의 역사인물로 선정됐었다. 충북연구원은 ‘충북의 역사‧문화인물’사업을 진행했다가 지금은 중단한 상태다. 당시 신미대사가 선정됐을 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충북의 역사문화인물은 58명까지 선정하고 예산상의 이유로 중단한 상태다.

김양식 충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영화 때문에 어쨌든 세조길을 찾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관광활성화에는 큰 도움이 됐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개봉되면서 신미대사에 대한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다. 조만간 지역민을 모아 1박 2일 캠프를 법주사와 복천암을 중심으로 진행해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혜각존자 신미대사의 가계와 생애’ ‘속리산 복천암과 신미대사’ 등 신미대사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쓴 민덕식 전 국사편찬위원회 교육연구관은 “신미대사와 관련한 자료는 다 봤지만 한글창제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찾을 수 없었다. 한글창제는 비밀 프로젝트였다. 작가들은 다양한 상상력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학계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국문학자가 연구한 결과를 뛰어넘는 큰 자료가 나오지 않는 이상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은 공식화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민덕식 박사는 “문종실록을 보면 문종 3년에 문종이 직접 말하기를 세종이 신미대사를 안 것은 병인년인 28년(1446)이고, 세종 32년(1550)에는 신미대사를 친견하여 우대했다고 한다. 한글 창제 (1443) 이후 3년이 지나 신미대사를 만났다는 기록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신미대사는 혜각존자라고 불렸고, 왕사(왕의 스승)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분이다. 복천암에 있으면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70년간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이다.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해서 중생들을 교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수양대군, 양평대군도 왕이 되기 전 신미대사에게 무릎을 꿇고 예의를 다했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에게 불심을 심어준 것도 신미대사였다. 세종이 왕자 2명을 잃고 뒤이어 소헌황후마저 세상을 떠나자 상실감이 컸을 때 신미대사가 불심을 심어줬다는 것. 세종 말에 복천암은 중창을 한다. 복천암은 왕실의 원찰 역할을 한다. 세종의 천도재 또한 복천암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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