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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에 공모제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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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에 공모제가 있었다니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08.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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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지난 7월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찬란한 로마제국의 역사를 간직한데다 르네상스운동이 시작된 나라답게 볼 게 많았다. 이탈리아에는 왜 그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지, 왜 그렇게 비싼 입장료를 마다하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중 이탈리아에서 1400년대에 건축 공모를 시행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운동이 일어난 곳이면서 세계적인 건축물이 많은 도시다. 세례자 요한 세례당과 피렌체 두오모성당이라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있다. 두오모 성당이란 그 도시에서 가장 대표되는 성당을 말한다.

1400년 여름, 피렌체에서 흑사병이 다시 창궐하자 피렌체 직물업자협회는 하늘의 은총을 구하고자 세례자 요한 세례당에 기존의 청동문과 비슷한 새로운 청동문을 더 달기로 하고 세기의 공모전을 열었다. 이 곳에는 요한의 일생을 주제로 안드레아 피자노가 제작한 청동문이 있었다.

여기에는 7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주최측은 일정한 청동을 나눠주고 구약성서 창세기 중 ‘이삭의 희생’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오도록 한다. 22세의 기베르티와 23세의 브루넬레스키가 최종 후보에 들어갔고 기베르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후 1418년에 피렌체 두오모성당의 쿠폴라를 세우는 공모전이 또 한 번 열린다. 쿠폴라는 돔처럼 둥근 형태의 지붕을 뜻한다. 여기에는 12명이 경합을 벌였는데 역시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로 압축됐다. 이번에는 브루넬레스키가 이겼다. 이들을 뽑기 위해 심사위원회도 구성됐다.

1400년에 실시한 공모가 이 나라의 첫 공모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제도는 당시 신출내기였던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를 부상시킨 계기가 됐다. 이후 둘은 작품을 훌륭하게 만들어 천재 건축가 소리를 들었다. 관광객들에게 기베르티의 청동문과 브루넬레스키의 두오모성당 쿠폴라는 필수 코스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와 더 유명해졌다.

공모제의 취지가 실력있는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이 제도는 큰 성과를 거뒀다. 1400년대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해당한다. 그 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요즘이야 넘쳐나는 게 공모제이고, 법적으로 공모하도록 못 박은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공모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가. 공모 한 번 하고 나면 학연·지연·혈연이 작용했다는 뒷얘기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작품의 질을 의심하는 시선도 많다. 또 탈락한 사람은 승복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게다가 주최측은 늘 예산부족과 시간부족에 허덕인다. 갖고 있는 돈과 시간에 맞추다보니 작품은 감동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물이나 공공조형물 중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정된 예산과 시간 안에서 짓다보니 몇 십년 버티는 게 고작이다. 선진국에서는 오랫동안 생각해서 긴 시간 동안 짓는 게 정착됐으나 우리는 빨리 해야 되니 있으나마나한 건축물과 조형물을 양산하고 만다. 몇 백년, 몇 천년씩 가는 건축물과 조형물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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