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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해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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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해야 살아남는다
  • 충청리뷰
  • 승인 2019.08.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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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원래는 그리스 신화에 빗대어 타자의 기대와 관심이 아(我)를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시작됐는데 지금은 내가 간절히 원하면 상대 즉 대상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더 자주 인용된다. 최근 충북인들은 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그야말로 가장 극적인 ‘효과’로 경험했다. 그 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첫째는 조은누리 양의 무사귀환이다. 가히 도민 모두의 간절함이 일궈낸 ‘충북인들만의 역사’라고 해야 성이 찰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태를 지켜보며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지원한 결과물이었다. 안 그랬다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가사의한 ‘실종 11일의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산악인 민준영 박종성이 10년만에 가족의 품으로 안기게 된 것이다. 비록 주검으로 발견, 귀환하게 되었지만 이들 둘 역시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동료들은 한 시도 그들을 잊지 않았고 지난 해에는 당시 원정의 의미를 상징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 내 직지교 인근에 추모비와 추모조형물을 세우며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또 있다. 남들은 평생을 해도 시간과 여력이 부족하다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등정을 세계 최단기간에 완수키로 하고 현재 이에 도전중인 산악인 조철희 얘기다. 그는 이미 지난 5월과 7월 안타푸르나(8091m)와 가셔브럼1봉(8035m) 등정에 성공했다. 갈 때마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었다. 이번에 시신으로 발견된 민준영·박종성과 산(山)에 있어 최고의 선배였던 지현옥(안나푸르나 등정후 하산 중 실종)이다. 이들의 사진을 정상의 눈 속에 묻으며 그저 이름 하나 하나를 목놓아 불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올해가 이들이 실종된 지 각각 20년(지) 10년(민· 박) 되는 해다.

두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간절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것은 정상의 사람, 살아남은 자의 숙명적인 책무인지도 모른다. 꼭 그렇게 조은누리 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꼭 그렇게 민준영 박종성 두 대원을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는지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기에 작은 방심과 자만은 주변인들의 책임이자 곧 지역사회의 귀책사유가 된다.

절박함이 부족해 보이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부다. 우리나라를 놓고 벌이는 김정은과 트럼프, 아베의 주고받기식 농간이 도를 넘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보수언론에서 물어뜯는 ‘글로벌 호구’라는 단어가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당연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정권엔 어느덧 치열함이 사라지는 것같다.

한반도에서 또 한번의 전쟁은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을 백번 공감한다 해도 주변국들의 의도적 능욕에 더 이상 침묵하는 건 많은 국민들에게 “이게 나라냐”는 망령을 되살릴 뿐이다. 자신을 믿어주려는 우리 대통령에 대해 김정은이 지금처럼 뒷통수를 치는 야바위짓을 계속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따끔하게 꾸짖어야 하고, 트럼프가 장사꾼 논리로 동맹을 업신여기면서까지 우리를 간보려 한다면 예의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질타해야 맞다. 뒤에서 트럼프와 짝짜꿍이 되어 날뛰는 아베보다도 오히려 김정은과 트럼프가 촛불혁명의 대한민국을 더 같잖게 보는 것같아 하는 소리다.

유대인이 그 작은 인구와 나라로도 최강 미국까지 좌지우지하며 세계질서를 견인하는 힘은 수천년 유랑생활을 통해 터득한 ‘생존의 법칙’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공언한 것처럼 ‘다시는 절대로 지지않겠다’는 민족적인 결기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의 침탈과 도발에는 그만큼의 무력으로 가차없이 응징해 왔고, 이런 간절함을 공유하기에 유대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데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연평도 포격 당시의 연약함을 보는 것같아 안타깝다. 강토가 기습공격을 당하고 있는데도 확전하면 안 된다며 말대포만을 쏘지 않았는가. 요즘처럼 이 나라가 동네북이 된다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전쟁은 절대 불가”가 아니라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피할 수 없다”로 나의 가치관부터 바꿔야 할 것같다. 자괴감이 그만큼 크다.

법무부장관 내정자 조국 문제를 보노라면 정부와 여당이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인식하는 데도 역시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조국에 대해선 이젠 야당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식상해 한다.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번 경험하면 다음부턴 기대감이 반감된다. 묵은 장맛이 지속적인 건 변하지 않는 풍미 때문이다. 교수와 정치를 왔다갔다 한 그는 이미 한 인간으로서, 특히 국가 책임자로서 자기풍미를 잃었다.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의 측근이 자리를 옮겨가며 연명했을 땐 그 끝이 좋지 않았다. 꼭 조국이 있어야 사법개혁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궤변과도 같다. 설령 대통령이 신임하더라도 본인이 고사했어야 맞다. 더군다나 강의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자님 말씀으로 이미지를 키운 것과 현실정치의 정글에서 제대로된 역할을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할 말은 아니지만 과거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이후 독재, 권위주의 권력에 부역하며 역사를 굴절시킨 원흉중에 하나는 왜곡된 학자적 논리와 가치관으로 무장해 강자에게 교언영색 했던 그 잘난 ‘교수님’들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영훈에 대한 저간의 사이비 논란을 보면 정치교수들에 대한 이같은 주홍글씨는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외교와 국방은 ‘현재상황’이다. 지금 한반도 문제가 그렇다. 비핵화와 평화, 통일 문제에 대해 아주 정제된 이상과 명분으로만 고집한다면 다음이 불안하다. 오늘의 적이 내일엔 아군이 되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엔 적이 되는 게 세계질서의 현실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과 간절함이고 여기에 수반되는 건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다. 그래야 뭐든지 지켜낼 수 있다.

더 이상 착한 사마리아인을 읊조리면 안된다. 대통령이 착하다고 해서 나라가 착하고 국민들까지 마냥 착하게 살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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