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학이사장을 죽였는가
상태바
누가 대학이사장을 죽였는가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1.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강희 자치행정부장

지난 10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한 윤석용 전 주성대 이사장의 자살사건은 예상대로 청주지역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자살 이유도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신입생 모집의 어려움과 이로 인한 경영난, 현실로 다가온 대학 구조조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얼마나 어려웠으면 죽음을 택했겠느냐”며 많은 지인들은 가슴아파했다. 그 호쾌한 웃음 뒤로 대학 걱정에 사로잡혔던 그는 결국 우리나라 전문대가 처한 현실을 온 몸으로 겪고 저 세상으로 갔다.

이로 인해 대학, 그 중에서도 지방 전문대학들의 살아남기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국민들은 실감했다. 대학 설립 인가를 마음대로 해주고 죽든 살든 그것은 ‘알아서 하라’는 정부의 이른바 ‘자율경쟁체제’가 현재 얼마나 많은 대학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몇 년전부터 신입생이 모자라 대학간에 신입생 채우기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지만, 대학 이사장이 자살할 정도까지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입생 모셔오기’를 수년째 겪고 있는 모 전문대 교수는 “입시철만 되면 우리는 교수도 아니다. 고등학교에 찾아가 한 명이라도 더 우리 학교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해야 한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모른다. 이러다보니 일부 고3 학생들 중에는 ‘공부 안해도 어느 대학이든 들어갈 수 있다’는 풍조까지 생겼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떤 대학에서는 등록금만 내고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졸업장을 주고, 입학할 기미만 있으면 교수들이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학들의 질적 수준은 심각할 정도까지 하향평준화 됐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 대학의 가장 큰 목적은 ‘인재육성’이라는 타이틀을 언제 떼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질적 수준은 형편없어졌다. 대학 졸업생 중 곧바로 산업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도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충북에는 4년제 대학 10개, 전문대 7개가 있다. 이들 대학은 주로 청주권에 몰려 있다. 작은 도시에 대학이 많다보니 교육도시를 넘어 대학도시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대학이 많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특성화된 대학이 많아 전국에서 몰려 들거나, 교육적 수준이 높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럽다면 몰라도 수적인 우세는 자랑할 게 못된다. 신입생 쟁탈전도 조그만 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다보니 출혈경쟁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학 이사장을 뛰어내리게 한 것도 이 때문 아닌가. 대학을 이렇게 코너로 몰아넣은 것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 크다.

96년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 인가서에 도장을 ‘꽝꽝’ 찍어줘 누구든 대학문을 열 수 있게 한 것이 오늘날 이런 아수라장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놓고 정부는 학생이 없으면 스스로 문을 닫으라고 말한다. 그게 다름아닌 교육정책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는 수밖에. 누가 이 마당에 딱 떨어지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뿐이다.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영남권과 호남권 보다는 충북이 신입생 유치에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질적인 우위를 담보할 때 얘기다. 2004년 충북의 4년제 대학 미충원율은 14.5%, 전문대는 37.5%로 전국 평균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를 알차게 채워 신입생 모집에도 성공하는 대학을 보고 싶다. 그것도 충북에서. 윤석용 이사장의 자살 사건 충격은 시간이 가면 무뎌지겠지만, 전문대의 살아남기 경쟁을 거론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할 것이다. 그 만큼 이 사건이 던진 파장은 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