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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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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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석 (서원대 법학과 교수)
   
요즘 유행하는 말들을 듣다 보면, 간혹 의미가 혼란스러워 어디엔가 있을 사전을 찾을 때가 있다. 물론 아이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신조어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간혹 정부나 자치단체가 국민을 상대로 사용하는 단어 중에도 헷갈리는 것이 있다. 바로 행정기관에서 시대적 화두가 되어버린 ‘혁신’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국가혁신’, ‘지역혁신’, ‘충북혁신분권’, ‘지역혁신 5개년 계획’, ‘혁신분권담당관’, ‘혁신복지담당관’ 등 등,? 이미 행정부서에서는 일상화된 용어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왠지 생소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조금은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다.

필자는 원래 게으른 성격인데다가 머리도 나쁘다 보니 혁신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섬뜩함 - 마치 혁신에서 실패한 자는 죽음이라는 느낌-과 모호함-총론의 화려함에 반해 각론의 허약함-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에서 혁신의 목소리를 높일 때도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외면해 왔고, 또 그래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그러나 이놈의 혁신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도 대학혁신이란 이름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이 흐름을 따르지 못하면 밥숟가락을 놓아야 할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오고 있어 난감하기만 하다. 교육부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지역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이라는 공모를 통해 채택된 대학에만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하니, 여기서 탈락된 대학은 당연히 재정적 위기로 내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건 좋건 오늘도 대학의 젊은 교수들은 대학혁신이라는 화두에 몰두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푸념에 대해 혹자는 철밥통 교수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지방분권시대를 맞이하여 지방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혁신은 당연한 것이며, 대학도 그 동안의 무기력과 비능률을 일신하여 인재를 양성해야 할 마당에 왜 혁신을 거부하느냐고 호통을 치고 싶을 것이다. 물론 혁신은 좋다. 그리고 그 혁신의 목적과 내용이 우리사회에 젖어있는 구태와 비능률을 개혁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그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혁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산업발전과 물질적 풍요함에 집착하고 있기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취지대로 라면 정부의 모든 정책은 발전과 개발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학교육도 쓸데없는 개똥철학은 접어두고 오로지 기술향상, 기술인력양성에 올인 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오로지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듯, 대학교육도 기능인이나 산업인력 양성만이 모두 다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원리에서만 보면 대학은 학생유치를 위해 취업률을 높여야 하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장이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해야 만 한다. 그런데 시장이 요구하는 인력은 사색하는 사람,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불의와 부정에 분노하는 사람보다는 일터에서 곧바로 써먹을 사람,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 거기에는 인성교육, 교양교육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지금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그것도 오래 전부터 민주시민교육, 철학윤리교육, 문화예술교육이 완전히 괴멸된 것도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사회와 대학은 정말 혁신되었고 사람들은 행복해 졌는가? 오히려 우리사회는 갈수록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온갖 차별과 야만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치관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택지를 위해서 갯벌이 없어져야 하고, 빨리가기 위하여 천성산의 도룡뇽이 죽어야 하며, 아파트를 위해서 두꺼비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은 외면 속에서 쓰러져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개발과 발전의 논리를 추종하는 혁신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이제라도 진정으로 세상은 혁신되어야 하고, 대학도 혁신되어야 한다. 세상의 혁신은 무엇보다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적 가치관과 비뚤어진 세태를 바로 잡는 방향이어야 하고, 그 속에는 인간이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학혁신이 필요하다면, 산업과 기술을 강조하다가 왜곡되어버린 ‘교육의 진정성’을 바로 잡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인성적, 윤리적 가치에 대한 일깨움에 대한 교육이 더욱 중요한 가치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세상은 이처럼 빨리 퇴색되어 가는데 빠른 걸음으로도 따라 갈 수 없으니 그저 우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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