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2]구천서 ‘실험’, 실패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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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구천서 ‘실험’, 실패만은 아니다
  • 충청리뷰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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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재개엔 오히려 확실한 ‘발판’
각종 족쇄 터는 계기 마련 시각도

한달만 더 있었으면…. 도지사 선거 개표가 끝나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구천서후보 지지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얘기다. 구천서의 색다른(?) 정치실험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원칙적으론 명분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수였던 출마, 선거를 불과 40여일 밖에 안 남긴 시점에서 JP에게 등떠밀려 도민 앞에 나섰지만 선전(善戰)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사실 그의 도지사 출마는 자민련의 전략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자민련에 대한 지역 정서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나마 당의 정점을 이루던 이원종 전지사가 한나라당으로 이적한 것에 대한 JP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이원종 전지사의 탈당 후 곧바로 당 차원의 ‘복수’를 천명한 JP는 당초 정우택의원(진천 괴산 음성)을 도지사 후보로 내세우려다가 여의치 않자 구천서 카드를 꺼냈으나 이반된 민심을 돌리지 못했다. 구천서 전의원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사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에 대한 도지사 출마설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실 JP로부터 출마제의를 받을 때까지도 구체적 생각을 안 했다. 전혀 준비없이 광역 자치단체장에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큰 정치적 부담이었고, 스스로에게도 꼭 출마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원종 전지사에 대한 JP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 출마제의를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실속은 다 챙기고 친정에 비수”
자민련과 JP가 이 전지사에 대해 가장 서운하게 생각했던 것은 선거에 임박해서 탈당했다는 점이다. 당초 탈당설이 나돌 때 일찌감치 당을 떠났다면 자민련이 그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구천서 전의원이 출마를 굳힌 4월 말까지도 이 전지사는 도지사 선거판에서 이른바 원맨쇼를 벌였다.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후보가 본인 한 사람인 상황에서 이 전지사는 자민련 탈당에 있어서도 그 시기를 끌면 끌수록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 상대적으로 타 후보의 부상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이 전지사의 측근들은 “다소 불리한 여론을 타더라도 탈당 시기를 마지막까지 늦추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 결국 자민련과 JP는 ‘어 하다가 당한 꼴’이 됐다. 구 전의원도 이에 대해 “이 전지사가 서로 뜻이 안 맞아 우리 당을 떠나는 건 좋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하지 않는가. 계속 물타기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다가 선거를 목전에 둔 결정적 시기에 배신했다. 자신의 실리는 마지막까지 챙기면서 친정(자민련)에 대해선 비수를 꽂은 격이다”고 표현했다.

17대 총선땐 경쟁력 있은 후보?
구천서 전의원은 낙선에도 불구, 오히려 정치재기를 위한 발판을 확실히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사생활 문제 등으로 불의의 일격을 당한 후 한 때 정치적 낭인(浪人) 신세였던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각종 부스럼을 일거에 제거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한 측근은 “미국에서 1년 만에 돌아 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 이어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오름으로써 분명히 활동재개가 이뤄졌지만 실제적인 정계복귀는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그가 지역구(청주 상당)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동안 거론된 추문을 극복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출마와 선전은 그의 이미지의 환골탈태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쨌든 그는 한자리수 지지도를 불과 40여일만에 30%대로 올리는 저력을 유감없이 보였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2년 후 17대 총선에선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고 내다 봤다.
정계에선 구천서씨의 향후 정치활동을 현재 맡고 있는 대한태권도협회장과 연계해 분석하려는 시각이 많다. 태권도계에선 구 전의원을 김운용(세계태권도연맹 총재)에 이어 세계 태권도를 이끌 인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대한태권도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경력이나 재력, 실력 등 모든 면에서 그만한 조건을 갖춘 인물도 드물다. 비록 도지사선거에선 낙선했지만 갑자기 출마,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선전함으로써 향후 활동에 힘이 실릴 것이다”고 내다 봤다.

이원종 당선자,‘비토세력’ 극복이 과제

재선에 성공한 한나라당 이원종당선자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한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에 대한 비토세력이다. 한 측근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후보의 지지도가 월등히 높게 나타났는데도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모든 선거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예상외의 변수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고, 그 핵심이 선거 막판에 불었던 일부 역풍이다. 이지사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선거전 초기만 하더라도 이지사의 지지도는 무응답층을 제외하고도 40~50%대를 넘나들었다. 당시엔 경쟁후보가 부각되지 않은 것도 원인이지만 이 정도의 지지도는 당적과 상관없이 당선권을 보장하고도 남는다. 때문에 이후보의 재선가도는 평탄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뒤늦게 뛰어든 자민련 구천서후보가 이원종 당선자를 바짝 긴장시켰다. 별 탈이 안 생기면 재선에 문제없다는 느긋함에 조바심이 생긴 것이다. 그만큼 반대파로부터 역공도 많았다. 특히 일부 식자층으로부터의 반감이 예상외로 컸다. 이들 대부분은 이원종 당선자의 도정이 립서비스에 치우치고 있다는 냉혹한 비판을 제기한다.
청주지역 대학교의 한 교수는 “솔직히 말해 이원종 당선자는 그 실체보다 과도하게 포장된 면이 많다. 그런데도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은 지난 4년간 서민층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자민련 구천서후보는 활동 기간이 짧아 서민층에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식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4년간 이원종 당선자의 도정은 역동적이 못했다. 또한 결정적일 때 책임감 있는 정면 돌파보다는 우회함으로써 신뢰감을 떨어 뜨렸다. 이런 전후 과정을 식자들은 잘 안다. 이들의 냉소를 극복하지 못하면 향후 4년의 임기가 평탄치만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원종 당선자에겐 선거전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의 해소가 당장의 과제로 떠 올랐다. 그에게 비판적인 많은 사람들은 조직 책임자로서의 향후 처신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현재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는 노인치매병원 특혜의혹건과 충북과학대 교수 및 일부 공무원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에 대한 이 당선자의 향후 대응이 큰 관심 거리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의리(?)를 지키는 당찬 모습과 선이 굵은 처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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