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정치부 차장
카멜레온처럼 낯빛을 바꾸는 정치인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지난날을 반성하며 새로운 정치지형에 순응하는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캐릭터를 여전히 부여잡고 연연하는 경우다.
두 번째 유형 가운데 굳이 누구를 예로 든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재야 운동권 인사에서 민중당 사무총장을 거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된 3선의 이재오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발전적 보수를 정강으로 하는 한나라당 의원이면서도 민중성을 부각시켜 이른바 '자전거를 탄 의원'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노무현정부 2년을 맞아 이른 화해무드의 격려편지를 보낸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발과정 속에서도 이 같은 성향은 역력히 드러났다. 이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실업자문제와 서민생활파탄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오히려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며 자신의 민중성을 강조했는데, '춥고 배고픈 서민들에게 따뜻한 격려를'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 글의 결론은 격려편지 사건과 여야의 행정도시 이전 합의 등에 대해서 당 지도부를 맹렬히 공격하는 것으로 집약돼, 글을 쓴 목적이 여당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당 지도부를 겨냥한 것인지 총구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인데, 사실 그의 행적이 그래 왔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지난해 7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독재자의 딸'로 규정하고 "오는 2007년에 그가 출마하면 100전 200패"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이 의원은 "아버지가 독재자라는 원죄는 아들의 병역비리로 낙선한 이회창 전 총재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독설을 퍼부어 여론을 들끓게 했다.
이재오의원은 지난달 중순 '광복 6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한 국회 공청회에서도 '한일협정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강만길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을 강력히 비난한 당내 의원들과 달리 "박정희정권이 졸속, 불법으로 했는지 국회 특위에서 조사하고 필요하면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도 소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또 이 문제에 '여당 보다 야당이 앞장서야 한다'며 생뚱맞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아직도 자신이 민주화 투쟁을 하던 당시의 박정희대통령과 싸우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그의 딸이 대표로 있는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으며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것인지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이제는 이 의원이 질기게 부여잡고 있는 민중성을 스스로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의원이 처음 제도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에는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요원했고 '우선은 제도권에 진입해야 한다'는 말이 곧이 들렸지만 이제는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어엿하게 정치세력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이 의원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계파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의혹의 눈길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더불어 여야의 행정도시 이전 합의가 '헌재의 판결을 또 다시 어긴 것'이라며 '수도서울을 사수하겠다'고 벌이고 있는 국회농성 등의 반발도 철저히 차기 대선과 당권경쟁을 염두에 둔 계파간의 갈등으로 비춰질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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