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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 이황의 탁오대, 그리고 복도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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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 이황의 탁오대, 그리고 복도별업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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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4>
퇴계 이황은 중종·명종·선조 등 세 임금에 걸쳐 홍문관 교리·성균관 사성·대제학·좌찬성을 지냈다.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당대 학자들로부터 ‘해동주자’라 불렸으며, 중종 때 청나라에 써 보낸 선생의 글을 청나라 예부상서에서 보고 “조선에도 이렇게 탁월한 학자가 있느냐?”고 경탄했다고 한다.

   
▲ 탁오대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명종 3년(1548)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단양향교를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백성들을 가르치는데 힘을 쏟았다. 이황의 선정을 입은 군민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거사비를 세웠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단암서원을 세워 그를 기려왔다. 이황은 학문에 대한 식견과 덕행이 높아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쓰는가 하면, 틈만 나면 자연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도취할 줄 아는 도인이기도 했다. 지금도 단양팔경 곳곳에는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다. 단성면 단양수몰이주기념관 앞에 있는 탁오대(濯吾坮)는 원래 단성면 남쪽의 우화교에서 상류 선암계곡 쪽으로 200m 지점에 있었다.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나랏일을 보다 피곤하면 단양천을 따라 산보를 하다 단양천 맑은 물에 목욕을 하고 이 바위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바위에 ‘탁오대(濯吾坮)’라 쓰고 그대로 새겨 넣었다 한다. 복도별업(復道別業)을 새겨넣은 바위도 원래 상방리의 탁오대 자리에서 상류로 30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

   
▲ 복도별업 암각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도 경계지점인 독락산성과 모녀티(인근에서는 멍어티라고도 함) 골짜기에서 발원한 단양천이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을 지나 두악산 아래 이르러 소를 이루니 복도소(復道沼)라 하였다. 이황은 농사일에 쓰도록 이곳에 보를 막았는데, 정사를 보다 피곤하면 자주 이곳을 찾아 맑은 물에 목욕을 하며 심신을 달랬다. 이황은 깨끗해진 마음으로 돌아오던 중 길가 화강암 바위에 해서체로 복도별업(復道別業)이라 친히 글씨를 쓰고 새겼다고 한다.

복도별업이란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산수를 찾아 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탁오대와 복도별업 암각자는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옛 단양군청 터로 옮겼다가, 1990년 단양수몰이주기념관이 건립되면서 그 앞으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1. 단양군수 이황의 탁오대, 그리고 복도별업 :
탁오는 중국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말이다. 滄廊之水淸焉 可以 濯吾纓 滄廊之水淸焉 可以 濯吾足 (흘러가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 흘러가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

2.단양팔경을 노래한 유학자들
단양팔경은 단양 인근에 펼쳐져 있는 여덟 곳의 뛰어난 경승지로, 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석문·도담삼봉·구담봉·옥순봉 등을 말하는데, 풍류를 아는 유학자들이 즐겨 찾으며 많은 싯구들을 남겼다.

< 상선암 >

한층 한층 올라갈수록 경치는 좋으나 높이 밟을수록 위태하더라 중선암 거쳐 올라가니상선암의 기이함 무궁하구나하늘이 간직한 비밀 깊이 드리웠으니마음은 자연 아름답고이 신비스런 곳 어찌 때가 없는고 땅은 실상 사람으로 해서 나아지고 속되지 않고 우아한 시기 있으리<윤봉구>※ 윤봉구 1714년(숙종 40년)에 진사로 나서 청도군수, 집의를 거쳐 판서까지 올랐다. 산림은 자연히 위험하고수석은 예부터 기이하다 들었다향기 그윽함도 이제 스러질 것임을 알지 못하는데누가 신비한 곳을 개척했던고길게 노래 부르니 계수나무가 움직이고술잔을 잡고 물으니 언제 신선이 지나갔던고 <윤봉조>지팡이 짚고 신 신고 그 곳에 노니오르고 오를수록 길은 위태롭더라선생의 어진 덕과 지혜가 큰 곳에경치 으뜸이고 산수도 기이하구나마을엔 누런 벌판 빛이 더하고집집의 연기는 노을져 주인을 얻었구나다시 내 위에 서서 그 연유를 물으니9월의 가을 빛깔이 때를 가리키더라<한원진>몇 해만에 선동을 다시 찾으니 수암 선생의 발자취가 계림에 흩어졌더라 경천벽은 홀연히 우뚝 서 있고수옥천의 맑은 물에 마음 담담하구나인간사의 바뀜을 어찌 감히 말하리늙은 이 몸 이 곳에 이르나 두 벌 옷이 젖누나늦게 계곡을 따라 산을 나오니늦은 걸음에 날이 저물었구나<권상유>

<중선암>
중선암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 성천부사를 사퇴한 김수증이 붙인 것이다. 그는 생원시에 합격, 정랑·사정 등을 거쳐 1675년 성천부사로 재임 중 동생 수항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사직하고 춘천 곡운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숙종 20년(1694)에 한성좌윤 공조참판 등의 벼슬을 받았으나 끝내 사양, 산 속에서 송시열 김시습의 초상을 모셔 그 사당을 유지라 부르며 학문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옥염대에는 1717년 윤헌주가 충청도 관찰사로 재임시 이곳을 왔다가 새겨놓은 ‘사군강산 삼선수석’ 8글자가 남아있다. 4군은 단양 제천 영춘 청풍을, 삼선은 상, 중 하선암을 가리킨다.

<하선암>
골짜기에 들어가 청류를 건너 고산에 올라가 절벽에 임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초연히 속계를 떠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이황>흰 돌이 층층으로 선 것은 방석을 겹겹이 널어놓은 것 같고 신공이 교묘하게 갈고 새김을 기다릴 것 없이 훌륭하다 종교를 불러 운문수에 떨어뜨리니 차가운 대 아래 하늘이 열렸더라(중략) <이황>

<사인암>
곁에서 생각하니 바둑 두는 소리가가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등나무 우거진 곳에 지팡이와 신 끄는 소리가 들린다 <홍낙인>

<도담삼봉과 석문>
山明楓葉水明沙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山導斜陽帶晩霞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 노을 드리웠네爲泊仙사橫翠壁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어 잘 적에待看星月湧金波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이황>강빛이 어두우니 늦노을이 일어나고 삼봉은 눈이 밝도록 비치었드라 북을 깎은 구름은 솟을 땅이 없으니 층층이 달리한 세 봉우리는 기러기가 열을 진 듯 하늘이 낸 솜씨일러라 소나무 가지 끝에 매는 웅크리고 물결이 뱃전을 치면 물아래 잠긴 용은 피리에 응해 운다 나무꾼 도끼자루 빌어서 신선의 길 묻고자 하니 석문에 깊이 들어가 바둑소리를 들었더라.<이황>

<구담봉과 옥순봉>
뭇 뫼뿌리는 서에서 동으로 뾰족이 나왔는데좁은 문은 비로소 가로질러 통하였다거친 물결은 몇 번이나 싸워 구름 위에 무너지고겨우 맑은 못에 들어 거울을 씻었더라천 개의 산 모양과 신령스레 나타난 암석은 귀신의 솜씨로 새긴 것일런가신선은 만장의 바람과 학이 노니는 바위에 있는 것 같다.
<이황>
碧水丹山界 푸른 물은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淸風明月樓 청풍에는 명월루가 있다仙人不可待 선인은 어찌 기다리지 않고招 獨歸舟 섭섭하게 홀로 배만 돌아오는가.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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