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을 지나며
상태바
청풍을 지나며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서<5>

   
월악나루를 떠난 유람선이 월악산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며 물살을 가르자 뱃머리 앞으로 비봉산이 앞을 가로 막고 다가선다. 이제는 모두 호수에 잠겨버렸지만, 비봉산 아래 물밑이 예로부터 수려한 산천경계로 이름난 청풍명월의 본향, 청풍의 옛 땅이다.

청풍 인근으로는 강과 어우러진 기암괴석과 벼루들이 서로 뒤질세라 뛰어난 풍치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풍호반, 제일강산, 장선협곡, 대덕산구, 서곡단애, 학현취적, 금수구곡, 무암계곡을 청풍팔경이라 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청풍은 남한강을 끼고 있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지금처럼 육로가 발달하기 전 남한강을 이용하는 수운이 큰 역할을 했으니, 강원도·경상도·충청도 일대의 세곡(稅穀)이 이곳 청풍에 모아졌다가 다시 남한강을 타고 한양의 용산창으로 옮겨진 것이다. 물이 차오르니 산천을 옮겨놓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 옮길 수 있는 유적들을 주섬주섬 모아 망월산성 아래 물태리에 청풍문화재단지를 조성하였다.

단지내에는 보물인 한벽루·청풍석조여래입상이 있으며, 금남루·금병헌·팔영루·응청각 등의 유형문화재가 있다. 또 옛 고가로 도화리 고가, 황석리 고가, 후산리 고가, 청풍향교가 있다. 이밖에도 예전 조상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1,600여점이 전시되어 탐방객의 눈길을 끈다.

   
망월산성을 돌고 청풍대교를 거슬러 올라 협곡 속으로 빠져들자, 비단을 펼쳐놓은 듯이 아름답다는 금수산이 남한강 푸른 물위에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 산 아래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어사 박문수가 태어난 도화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복숭아꽃과 어우러진 마을풍경이 특히 뛰어나 도화동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는데, 충청도 관찰사로 왔던 정인지도 이곳 학현 취적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단풍으로 물든 계곡과 산은 금수병풍’이라 했으며, 청풍부사 이계원은 ‘도화동천 제일강산’이라 했고, 부사 오도일은 ‘취적대 와선대’라 호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 청풍문화재단지 :
월악나루를 지나 597번 도로를 따라 단양방면으로 가다 수산에서 제천방면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충주호에 걸쳐있는 청풍대교를 건너기전 왼편으로 호반의 언덕에 있다.제천역앞에서 버스가 1시간에서 1시간 반 간격으로 있다.입장료는 어른이 990원. 어린이 330원이고 주차는 무료이다.청풍문화재단지 0443-647-7003

2. 청풍면과 문화재단지:
 1985년 충주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대부분의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된 청풍면은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제천에 편입되기전까지는 제천지역의 중심지였다. 일찌기 신라 경덕왕때부터 청풍이라 불렸으며 조선 현종때는 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충청도에서는 유일하게 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남한강을 끼고 있어 내륙의 물산과 한강을 타고 올라오는 바다의 물산이 교류되는 집산지로 북진나루에서 서던 청풍장은 제천인근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이리하여 청풍지역에는 옛사람들의 자취와 유적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모두 물에 잠기게 되자 물이 닿지 않는 물태리 언덕위로 옮겨 재현해 놓은 것이다. 단지내에는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 팔영루, 동헌건물인 금병헌, 관아의 출입문이던 금남루, 중앙관속의 객사로 쓰이던 응청각, 그밖에 문인석, 공덕비, 선정비, 고인돌 등이 옮겨져 있고, 민가의 살림살이도 보존되어 있다.

3. 능강콘도 :
충주호반의 능강리에 있는 별장식 휴양단지. 이에스리조트클럽의 회원제 콘도이며 도예가마, 로맨틱가든, 옥외수영장, 요트 등의 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다.서울사무소 (02)508-2323능강콘도 (0443) 648-048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