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청원 하나되어 서울에서 평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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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청원 하나되어 서울에서 평양까지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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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종 룡 청 주 시 의 원 (직지특위 간사)
   
평소 운동을 즐기는 나로서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 선뜻 신청은 했으나 해외연수를 다녀오자마자 곧장 짐을 또 꾸려야 하는 부담이 설레는 마음을 짓누른 것은 가장으로서의 책무 때문이었을까.

2000년 여름 가족 모두가 뱃길로 금강산을 다녀온 추억을 되뇌며 기분 좋고 보람되게 다녀오리라 다짐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주시의회 직지의 세계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간사로서 이왕이면 뜻 깊은 여정이 되도록 하자는 생각에 금강산이나 묘향산에 있을지도 모를 직지를 찾아보고자 “세계기록유산 직지를 찾읍시다.” 라고 적힌 머리띠 3백 개와 깃발을 부랴부랴 준비했다.

강원도의 푸른 숲을 지나자 북방한계선의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문을 위해 차량에 오른 북측 군인의 독기서린(?) 눈빛은 18세면 90%가 군에 간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측은함을 안겨주니 이 또한 같은 민족이라는 정 때문이었으리라.

포장된 길을 따라 드리워진 철길이 예정대로 2007년 개통되어 원산까지 줄곧 달릴 수 있다면 통일도 앞당겨 지리라는 생각을 하며 장전항 바다 위 해금강 호텔에 도착했다. 허술하기 짝이 없던 5년 전의 엉성했던 모습은 온데 간대 없어졌고 각이 잡힌 부두로 변모된 장전항! 저녁식사는 고성항 횟집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산 회 맛도 일품이었지만 북한이라는 시공간에서의 만남이라는 생각 탓인지 술잔을 더더욱 부딪치며 “남북통일을 위하여!” 라는 건배가 끝없이 이어졌다. 단체별로 나뉘어 배석한 테이블을 헤집고 다니며 직지 찾기 머리띠를 매 달라는 부탁을 하다 받아 마신 북한소주가 나를 취기(醉氣) 속으로 몰아갔다.

호텔1층 라운지에서 시작된 시립합창단의 주옥같은 선율이 금강산 자락으로 울려 퍼지자 일행들은 내일 아침 마라톤이 있음도 잊은 채 장전항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날 동틀 무렵 7시 반 호텔 앞 광장에 모인 참가자 모두가 맨 머리띠를 접하는 기쁨은 마라톤 완주 못지않은 희열을 안겨 주었다.

<충북경제 활력>, <평화통일 기원>, <오송 분기역 유치>, <청원 청주 통합>, <직지를 찾읍시다.>라고 새긴 깃발이 금강산을 배경으로 형형색색 펄럭이니 이 또한 색다른 장관이었다.

상큼한 봄바람을 헤치며 북녘 하늘을 달리던 그때의 행복감을 어떻게 다 글로 형언할 수 있을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던 청마회 선수(?)들에 이어 9번째로 골인하였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이 기회에 평양까지 달리게 해 준다면 몇 날이라도 뛰어 갈 텐데 하는 상념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곧이어 구룡연 등반! 머리띠에 깃발을 들고 산에 오르니 안내원이 허겁지겁 확인을 하며 “직지는 프랑스에 있는데 왜 여기로 찾으러 왔느냐”는 당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직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사이 그와 나는 한민족 한 핏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직지를 찾아주면 20억원의 보상금을 준다고 설명하자 “돈은 필요 없으며 찾으면 청주에 안주고 금강산이나 묘향산에 둘 테니 그 곳으로 와서 보라“고 당찬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주의의 단면을 엿 볼 수 있었다.


청아한 계곡물과 숲의 아름다움, 기암 바위 사이로 새겨진 붉은 주체사상 글은 여전한데 안내원의 능수능란한 말솜씨는 세월 따라 많이도 변해 무장 해제된 남측 사람들이 속내를 다 털어놓는 형국이었다.

산행 후 들어간 금강산 온천욕은 삶의 낙원임에 틀림없으니 홀딱 벗은 상태에서도 대화는 진지하기만 했다. 이어진 교예관람은 탄성을 자아내며 어른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5년 전 공연은 어린이가 주무대를 장식, 어머님과 장모님이 퍽이나 우셨는데 이제 성인이 다 된 모습들이다.

마지막 날, 소달구지를 끌며 먼 길을 재촉하고 바지 걷어 올린 채 자전거를 메고 개울을 건너는 모습과, 삼일포 소학교 정면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라고 쓰인 현판을 보며 비포장 길을 구불구불 달려 해금강에 이르니 노랫말에 나오는 그곳이 바로 거기이던가 싶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기원제가 우리를 더욱 숙연케 하고 삼일포가 포근히 우릴 맞는다. 고성평야 한 모퉁이에 심겨진 제천 사과나무를 지키는 병사와 깃발로 교신 하는 수많은 병사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서 있는 것일까?


며칠사이 부드러워진 북측군인의 눈빛을 뒤로하고 남방한계선에 이르자 남북통일보다 급한 청원 청주통합도 못 이루고 있는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옴은 나만의 자조일까? 서로가 하나 되어 서울을 거쳐 개성공단에서 점심을 먹고 평양까지 함께 달릴 그 날은 그 언제일까? 분명 그날은 오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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