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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을 그리는 생육신 원호의 관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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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을 그리는 생육신 원호의 관란정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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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2>

   
▲ 관란정 전경
제천시 송학면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장곡리는 강원도 영월군과 서강을 경계로 접하고 있는데, 서강가 절벽 위 산마루에 원호의 충절을 기리는 관란정이 있다. 관란정으로 오르는 길목에 원호의 충심가가 새겨져 있는 빗돌이 있고, 빗돌 옆으로 송림이 우거진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산마루에 관란정이 있다.

   
▲ 관란정을 알리는 빗돌 뒷면에 새겨진 충심가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울어 지나가다이제와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슬러 흐르고져 나도 울어 보내도다'

   
▲ 관란정의 현판
원호는 단종 때 생육신 중 한 분이다. 원주 출신으로 호를 무항, 또는 관란이라 했다. 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 문종 때는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황보인·김종서 등을 죽인 뒤 어린 단종을 내몰고 왕위를 찬탈하자 원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 은둔하였다.

뒤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원호는 서강가로 달려와 초옥과 단을 쌓고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된 영월 청령포를 향해 사배를 올리고 임금을 그리워하였다. 또, 이곳에서 표주박에 먹을 것과 글을 넣어 서강에 띄우면 흐르고 흘러서 청령포 기슭의 단종에게까지 닿았다고 한다.

   
▲ 관란정을 알리는 빗돌
단종이 죽음을 당하자 원호는 그곳에서 삼년상을 지낸 뒤 원주로 돌아가 치악산 아래 초막에 묻혀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의 충절에 탄복한 세조가 각별한 마음으로 호조참의에 제수하여 불렀으나 단연 거절하였다. 그러다 손자인 숙강이 사관이 되어 직필로 화를 당하자 자신이 저술한 책과 상소문을 모두 불태우고, 아들들에게 책을 읽어 세상의 명리를 구하지 말 것을 엄하게 경계하였다.

그는 앉을 때는 항상 동쪽을 향해 앉았고, 누울 때도 항상 머리를 동쪽으로 두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는 단종의 장릉이 자기 집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생을 단종만 그렸던 것이다. 1845년 후손들을 중심으로 그 자리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관란정을 세워 원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 관란정에서 내려다 본 서강
증수 약기에는 “관란선생은 단종조 생육신의 한 분이신데 오직 선생만 두려울 때 있었으면서도 신하의 도리를 다한 특별한 충절은 넉넉히 혜성으로 우주를 비추었다. ”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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