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물길을 따라서<9>
丘陵을 타고 앉은 果樹園의 복사꽃은 누군가의 點描畵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아득한 記憶 속의 情景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아아 散散히 흩어져간, 分身들-齒車와 齒車 사이의 摩擦熱永劫으로 부어진 나의 風景들의 「에키스」! 이제 여기 남은 나의 얼굴의 陰影 나는 봄 따스한 果樹園사이로 그어진 오솔길가에 잊혀 버려진 녹스른 鐵帽나 褪色된 채 버려진 종이쪽처럼 잊혀버려지기나 한다면 차라리 이 봄을 느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不可缺의 T·O였다. - 「風船記-九號」중에서
▲ 신단양공원에 세워진 신동문 문학비 | ||
시루섬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애곡리에 신동문 시인이 절필을 선언하고 내려와 살던 농장이 있다. 그의 시집에는 절필 전 1956년에 간행된 「풍선과 제3포복」이 있다. 신동문 시인이 살았던 애곡리는 사적 제398호로 지정된 수양개 선사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수양개 선사유적전시관 | ||
이밖에도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바램과 주술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 젖소 정강이뼈에 새겨진 물고기 모양이 발견됐고, 씨앗, 숯, 꽃가루 등도 발견되어 당시의 생활과 자연환경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는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지이다. 출토된 유물은 현재 구단양에 있는 수양개 선사유적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1. 수양개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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