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등 국내기업에서 하이닉스 인수해야”유영갑 충북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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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등 국내기업에서 하이닉스 인수해야”유영갑 충북대 공대 교수
  • 충청리뷰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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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0일 충북대 학연산공동기술연구소에 교수들이 한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공대 전기·전자 컴퓨터공학부 소속 교수 뿐 아니라 경영대학 교수와 자연과학대 물리학과 교수들의 얼굴도 눈에 많이 띄였다. 이날 모인 80여명의 교수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내용의 성명서를 기습 발표,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반도체산업육성지원교수’ 일동 명의로 발표된 성명서는 하이닉스반도체의 해외매각 반대와 독자생존 방안 모색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충북대 교수들의 성명 발표가 주목을 끈 것은 성명이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하이닉스 조차 모르게 이뤄졌다는 형식의 파격뿐 아니라, 특정한 사안에 대해 여러 학과의 교수들이 학문의 울타리는 물론 대학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역사회와 국가를 상대로 ‘한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데에 있다. 군사독재시절 사제단은 물론 지성의 상징인 교수들의 양심적인 시국선언은 몇천 몇만의 일반 시민 목소리보다 비교할 수 없는 권위의 무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이번에 성명서 발표를 주도한 충북대 공대 전기·전자 컴퓨터 공학부의 유영갑 교수를 만나 하이닉스 반도체 처리 해법을 둘러싸고 정부와 어떻게 다른 견해가 교수들의 집단성명 발표라는 중대사건을 촉발하게 한 것인지 들어봤다.

-성명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정부가 확정한 하이닉스의 매각방침은 국내 IT(정보통신)뿐 아니라 NT(나노테크놀로지·극미세기술) BT(생명공학기술) 등 신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교수들의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정부에서는 매각대신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돕기위해 정책·금융상의 지원에 나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나라산업을 생각하는 교수협의체(나산협)에서는 이에앞서 지난 6월 11일 나산협 발족 기념 심포지엄을 통해 하이닉스 매각추진의 연기를 정부에 탄원했었습니다. 하이닉스라는 특정 기업에 대해 전문가 집단에서 이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인데요. 무엇이 상아탑 안의 교수들을 고민케 한 겁니까.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애정과 걱정 때문입니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 성장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하이닉스에 대해 매각이 유일한 방안인 것처럼 논의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의 염려가 증폭된 것 입니다.”

-정부의 매각방침이 그토록 비난받을 만한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IMF이후 정부가 한계기업 등을 해외에 매각, 외환보유고를 높이는 한편 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분명 높이 평가돼야 합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경우 지금 하이닉스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미래 전망이 매우 밝다는 점에서 해외매각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일 뿐입니다. 말그대로 나라의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특히 하이닉스 반도체를 살리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유 교수는 학부제의 문제점도 거론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BK21 사업에 따라 충북대에 전기·전자 컴퓨터 공학부를 신설, 학생들을 매년 500명씩 잔뜩 뽑아 왔는데 이들이 첫 졸업하는 2004년에 막상 취업대란이 우려되고 있어요. 그동안 하이닉스 반도체에서는 충북대 출신들을 대거 채용해 왔지만 최근 2-3년 사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역인재로 키워진 제자들의 진로가 봉쇄되고 있습니다.” 결국 제자들을 걱정하는 선생의 마음이 교수들의 집단 성명 발표를 자극했음을 유교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하이닉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선 노사관계가 건전합니다. 기술력도 뛰어나고요. 하이닉스는 이미 몇 년전에 반도체와 전자기기에 대해 표준을 정하는 JEDEC에 SL DRAM에 대한 표준방식을 제안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SL DRAM은 고속컴퓨터에 들어가는 메인 메모리를 말합니다.” 유교수는 하이닉스가 살아야 하는 다른 이유로 삼성전자의 유아독존식 생존의 불가성을 들었다. 반도체 회사가 단일로 존재할 때 정부의 반도체 관련 지원·산업정책이 공정하고 타당성있게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교수는 또 교수들의 순수한 뜻을 살리기 위해 성명발표 사실을 하이닉스측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해외매각이 곤란하다면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또 전문가 집단으로서 교수들이 하이닉스의 독자회생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LG로의 역빅딜은 반도체 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정부로선 자존심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방안일 겁니다. 따라서 저의 소견으로는 SK가 됐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능력있는 국내의 대기업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것이 국내 반도체산업 보호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역의 우수한 두뇌들이 역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경제계의 주도세력이 보다 다양해 지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유교수는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달리 부품 및 제조장비를 국내 업체들로부터 조달받고 있는데 이웃 천안에 협력업체들이 집중돼 있다”며 “이런 만큼 하이닉스의 독자회생 노력을 본사가 있는 경기도 뿐 아니라 충남도와 연계, 함께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희 교수들은 반도체 관련 특허를 하이닉스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교육 및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방학을 맞아 오는 20일부터 비메모리 관련 설계 교육과정을 무료로 개설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번 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김경호 충북대 공과대학장과 김상욱 경영대학장 등 동료 선후배 교수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는 유교수는 “충북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의 다른 대학들도 반도체산업 보호를 위해 같은 목소리 내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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