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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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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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관음사주지)
   
온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구속 수감을 지켜보면서 세상일이 덧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한 때 ‘세계경영’의 귀재였던 총수가 1평 남짓한 독방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칠순을 앞둔 노(老)경제인은 ‘잘나가던 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회한과 울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밝혀지는 정치권과 연루된 사건들의 이면에는 언제나 ‘검은돈’이 오고 간다. 그렇지만 권력의 핵심에 있을 때 수수한 그 돈은 인과의 법칙에 따라 잘못하면 ‘수갑’차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어찌 보면 김우중 전 회장은 다리 뻗고 잠들겠지만 대우그룹과 연루된 정치인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터이다.

왜 사람들은 권력과 돈이 주어졌을 때 더 집착을 하고 욕심을 내는 것일까. 자신의 인생이 가장 정점일 때, 돌아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을 보면 ‘취모검’의 꿀을 탐내는 어리석은 여우같다는 생각이 든다. 칼날이 예리한 취모검(吹毛劍)에 묻은 꿀이 달콤하여 조금씩 핥아먹다가 결국 혀를 잘리고 마는 여우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람 또한 몰래 한번만, 또 한번만 하다가 권력과 돈의 맛에 자신도 모르게 취하게 된다. 이처럼 권력과 돈은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그 부작용이 그림자처럼 뒤따라서 자신과 사회를 어둡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무엇이든 잘 풀릴 때가 더 위험하고 함정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다시 말해 ‘잘 나갈 때’ 더 청빈하고 겸허해야 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라.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매사 조심하고 점검한다. 그러나 일이 술술 잘 풀릴 때는 마음의 긴장이 느슨해지고 방심과 자만의 그늘이 생기게 된다. 이런 마음의 틈을 경계하고 살피는 지혜가 우리 삶에서는 퍽 중요하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가 히트한 적이 있었다. 직업 경호원이 인기 가수를 보호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남녀간의 사랑을 담은 멜로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 영화 포스터에 적힌 ‘보디가드의 3대 원칙’이다.

첫째, 시선을 떼지 말라.
둘째, 방심하지 말라.
셋째, 사랑하지 말라

경호업무를 담당하는 보디가드가 의뢰인에게 시선을 놓치면 그 사람은 위험한 순간에 직면하게 되므로 절대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잠깐의 방심은 경호하는 일에 틈이 생기므로 적에게는 공격의 기회를 주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보디가드에게 있어서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또한 의뢰인과 사랑에 빠져서 개인감정이 개입되면 객관적인 통찰과 판단력이 상실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원칙이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보디가드의 3대 원칙은 영화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원칙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이 세 가지를 국민을 지키는 보디가드의 원칙으로 삼아야 옳다. 그래서 이렇게 감히 부탁하고 싶다. 한 순간도 국민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말 것이며, 자신의 본분을 어기고 국민에게 방심하지 말 것이며, 표를 얻기 위해 국민과 사랑하지 말라고.

아무런 걸림 없이 자기 뜻대로 일이 잘 이루어질 때는 한번쯤은 그 일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냥 습관처럼 따라가다 보면 후회할 일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는 성현의 말씀이 이와 다르지 않다.

백 번 조심하여도 한번 방심하면 일을 망치기 쉽다. 무슨 일이던지 승승장구할 때 겸손하고 조심해야 되는 것은 복에서 재앙이 생겨나는 이치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만 백성의 스승이었던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비문에는 ‘우행호시(牛行虎視)’라는 법어가 적혀 있다. 매사를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고 호랑이처럼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일이 잘 풀릴 때 더 조심하고 내 뜻대로 잘 될 때가 오히려 유혹이 많은 때라고 여기고 현재의 자리를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 정치인의 첫째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요즘말로 바꾸자면 ‘잘 나갈 때 조심하자’는 뜻이다.

모든 일이 잘 될 때 사소한 일에 방심하여 큰일을 그르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지만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서 연민과 지탄을 동시에 보내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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