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의 노무현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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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의 노무현 리더십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9.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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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덕 현(본지 편집국장)
남미 순방을 위해 비행기에 오르며 노무현대통령이 던진말, “내가 없으니까 당분간 나라가 조용해 질 것이다.” 만약 이런 말이 7, 80대 권위주의 정권에서 나왔다면 국민들은 엄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TV뉴스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이는 이미 노대통령의 돌출행동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여정부에서 확실하게 변한 한가지를 꼽는다면 대통령 권위의 평민화다.

굳이 평민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제 대통령의 동정을 바라보는 심정이 아주 일상처럼 편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부의 실제까지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밖으로 비춰지는 모습은 그렇다.

일개 야당 대변인으로부터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저주의 악담까지 받았는가 하면, 본인 스스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누차 천명한 마당이라 엊그제 터져 나온 말도 처음엔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노무현대통령이 임기 8~9개월전에 그만둘 것같다는 한 여당 인사의 전망이 그렇다.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나온 얘기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하지 못한다면 정변이나 다름없다. 역대 대통령의 말년이 하나같이 추했던 관계로 이번만큼은 꼭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자는 국민 여망은 절대 강요된 명제가 아니다. 설령 도중에 하차하는 것이 정치나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절차가 명백해야 한다. 더 좋은 방안이라면 노무현대통령만이라도 정상적인 임기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탄핵과 복권으로 국민적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 67조 4항은 대통령의 나이를 40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인 40세 이상으로 못박은 이유는 자명하다. 말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현혹되지 않는 리더십을 발휘해 나라를 통치하라는 뜻일 것이다.

젊은 시절의 번뜩이는 기지와 패기, 그리고 아이디어도 좋지만 이를 잘 조율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추진하려면 사실 40세이상의 인생 관록은 필수적인지도 모른다.

노무현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선진국형 대통령의 선례를 남기고 있다는 호평과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의 극치라는 혹평이 상충한다. 사실 과거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시절 넥타이 차림의 정장이 아닌 청바지와 와이셔츠의 평상복에 국무회의에서조차 여유롭게 농담을 주고 받는 외국 대통령상을 부러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노무현식 대통령상은 이를 충족시키기도 남는다. 다만 5000만 인구를 통솔하는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에게 좀 더 안정된 믿음을 주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을 만나다보면 예외없이 노대통령의 장점과 리더십을 입에 올린다. 그중에 하나가 순교자적 리더십론이다. 워낙 변화를 꺼리는 구악(舊惡)의 껍질이 강하다보니 노대통령이 순교자적 심정으로 스스로 부딪치고 스스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많은 부분 돌출행동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 매도됐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국가적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노대통령이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그러면서 그런 의중을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야당이나 여론을 탓하곤 한다.

사실 참여정부가 들어 선 이후의 사회적 변화를 일일이 꼽는다면 할말이 많다.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많은 변화가 시도됐고 또 그 과정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하다못해 붙잡혀 온 취객이 되레 파출소 기물을 부수며 공권력을 탓하거나 과거 살벌하게만 느껴지던 국가기관을 우습게(?) 여기게 된 것도 참여정부의 덕인지 모른다. 다만 이를 어떻게 승화시켜 말 그대로 성숙된 국민의식으로 표출해 내느냐가 향후 과제이지만, 어쨌든 노무현대통령이 허덕이는 와중에 국민들은 한층 더 성숙해진 것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성과도 없다.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한번도 책임있는 행동을 못하고 양지만 좇아 다닌 고건씨를 최고의 대통령감으로 만들어 버린 노무현대통령의 결벽증과 어지러운 다변(多辯)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효과를 원하다 보면 그 자체가 부작용이 될 수도 있다.

무조건 추구한다고 해서 일이 뜻대로 성사되지는 않는다. 때론 기다리고 때론 되돌아 보면서도 뚜벅 뚜벅 자기의 길을 가는 모습이 더 믿음을 준다. 직장을 잃고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가족들 앞에선 결코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지금 우리시대 가장들의 우직한 리더십이 간절한 것은 나만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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