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하는 사람이 접시를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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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하는 사람이 접시를 깬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5.09.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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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충청리뷰 부국장

2005년 충북지역 최대의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청주·청원 통합 주민투표였다. 그런데 결과와 관계없이 느낀 게 있다. 그 무더운 여름 날, 주민투표가 무산될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몇 번씩 넘기면서 투표 날짜를 받았으나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투표?’ 혹은 ‘이번에는 누구 뽑는거야?’라는 식이니 투표하자고 이리 저리 뛰어다닌 사람들 힘이 안 빠질 수 없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주민투표 용지를 받았으나, 바쁜 일이 있어 투표를 기권한 사람들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은 아무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북도의회로, 청원군의회로, 행자부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참정권을 확보한 이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우리 의사로 통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통합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들을 할 때는 조용히 있던 지역인사들이 왜 그렇게 발목은 잡는지, 이번에 새삼 확인했다.

투표 하루 전날인 28일 아침 출근길, 플래카드 한 장이 시야에 딱 들어왔다. “일생에 한 번 뿐인 통합 투표, 꼭 참여합시다” 뭐 그런 내용으로 기억된다. 94년 주민투표가 행정기관에 의한 일방적인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주민들의 뜻에 의해 치러졌다. 그래서 94년 주민투표를 무덤덤하게 치렀다면 이번에는 긴장감과 떨리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나의 의사대로 결정되기를.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은데다 지역현안을 스스로 해결하자는 의식이 없다. 충북인들의 소극적 성향이야 말로 때때로 도마위에 오르는 얘깃거리 아닌가. 이런 이유들로 그 숱하게 논의만 해오던 청주·청원 통합을 스스로 결정해보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청주시민과 청원군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정부에서 2010년에 전국을 광역화한다는데 그 때 가면 청주와 청원도 합치든지 쪼개지든지 할텐데 왜 나서? 기자가 뭐가 몸달아 야단야? 통합하면 누가 상 줘?” 그렇다. 가만히 있어도 청주와 청원의 운명은 전국의 광역화 프로젝트에 휩쓸려 개편될 것이다.

그러나 이 광역화 계획은 노영민 의원의 말대로 언제 될지도 모르는 ‘어음’이고 주민들이 선택한 주민투표는 ‘현찰’이었다. 더욱이 행정체제 개편계획은 정부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것이고, 통합 주민투표는 우리 스스로 한 것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어쨌든 좋다. 우리 손으로 통합 여부를 결정했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이번 통합 주민투표를 계기로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어렵게 얘기할 것 없이 우리지역의 일은 우리 손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그 쉽고 단순한 논리를 잊지 말자. 충북은 그동안 중앙정부에 너무 기대고 살았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렸어도 중앙에서 하면 따라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존재한다. “다른 지역은 안 하는데 왜 우리가 먼저 매를 맞나?” “선례가 없어 못한다”는 소리를 지역 공무원들에게 자주 듣는다. 제발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추진하다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설거지 하는 사람이 접시를 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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