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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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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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진(관음사 주지)
   
산창을 열면 가을의 소식이 들린다. 그새 하늘이 더 높아지고 산그늘도 한 뼘이나 줄었다. 벌써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난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눈빛도 햇살만큼이나 엷어지고 선해진 것 같다.

이처럼 가을의 소식이 하나 둘 전해지면 이웃의 인연들에게 새삼 친절해지고 싶다. 다른 때보다 마음도 넓어지려 하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생기려 한다. 그래서 늘 마주하는 얼굴도 짜증스럽지 않고 서운했던 어제의 일도 얼음 녹듯 스르르 풀어진다. 역시 가을은 삶의 둘레를 살펴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배경이다.

무엇보다 가을이 주는 법문은 무소유의 가르침이다. 맑은 하늘을 사랑한다면 장신구처럼 달고 있는 소유의 무게를 느껴야 하리라. 간디의 표현처럼,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지니라는 청빈한 삶을 말한다. 그러므로 청빈은 선택한 가난이고 빈곤은 주어진 가난일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더 많다. 하나 둘 소유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삶의 중심에서 물러나 있는 것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니고 있는 물건은 모두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하나의 물건이 없어졌을 때 조금 불편하다면, 그것은 꼭 필요했던 물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욕력오중배(慾力五重培)라는 옛말이 있다. 욕심으로 하는 일은 평소의 마음보다 다섯 배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 다섯 배의 힘을 날마다 소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론 이러한 욕심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아집과 이기로 무장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속고 속이는 일 또한 이러한 욕심이 만들어 내는 투전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하나를 더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힘을 쓰기보다는 한 가지를 버리기 위해서 힘을 사용한다면, 우리 삶의 무게는 지금보다 다섯 배는 가벼워질 것 같다.

또한 가을은 가식과 위선을 벗어버리는 계절이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먹구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짓과 방종을 멀리 할수록 그 사람은 아름답다. 겉모습이 그럴 듯하다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의 뜻이 청정하고 정직해야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거짓 없는 자신과 마주 앉아 두런두런 자기의 허물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멀리 퍼질 수 있다.

몇 해 전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어느 사원을 참배했는데 그곳에 모셔진 불상을 보고 무척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입상으로 조성된 거대한 불상은 참배하는 자의 위치에 따라 그 표정이 달라 보였다. 말하자면,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 근엄하고 권위 있는 얼굴로 보이고, 먼 뒷자리에서 바라보면 아주 인자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곳의 사찰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정치인 등 사회 지도자들은 앞자리에 서게 하고, 서민들은 뒷줄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사회 지도층들에게는 무서운 모습으로, 서민들에게는 자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셈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층이 부패하고 무능하면 온 나라의 백성이 가난하고 힘들다. 그래서 그들에게 더 엄한 모습으로 꾸짖고 본분을 일러주기 위해서 참배하는 위치가 특별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가까이 있는 측근에게는 더 엄격하고 멀리 있는 국민의 소리를 살피고 들을 줄 아는 천수천안(千手天眼)의 대통령이길 바란다.

누구나 자신의 눈 아래 붙은 티끌은 보지 못한다. 자신의 허물보다 남의 잘못을 들추어보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남의 탓으로 넘기지 말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가을, 그래서 하늘이 티 없이 맑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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