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말고 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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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말고 또 있어?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08.2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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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동상 전체 93개 중 7개 여성, 이 중 4개가 유관순
남성 독립운동가 지원했던 활동 인정받지 못해 기록없어 ‘문제’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 신채호 동상과 부인 박자혜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에 있는 단재 신채호 동상과 부인 박자혜

 

“교과서에 기록된 역사속의 여성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여성들은 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아니 여성들은 왜 기록 자체가 없었던 것일까?”

지난 23일 충북도와 충북여성재단이 주최한 ‘2019 양성평등 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 날 주제는 ‘여성사로 새로 쓰는 충북독립운동’ 이었다. 그는 한국여성사를 강의하는 국내 유일 남성 역사학자이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를 휴직중인 주 관장은 지난 1995년 상명대에서 처음으로 한국여성사를 개설해 20년 동안 운영했고 ‘한국여성사 깊이 읽기’라는 책을 공동으로 출간했다.

주 관장은 역사속에 여성의 기록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전근대사회에서 문자란 지배층의 전유물이고, 역사는 문자를 통해 경험한 것 가운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기록한다. 그러다보니 지배층 남성의 기준에서 가치있는 것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겼다. 여성들도 글로 표현할 수단이 없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비로소 여성들이 문자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기록을 남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올해 전체 독립유공자는 1만5511명인데 여성은 432명으로 2.78%에 불과하다. 최초 독립운동가 서훈이 실시된 1949년부터 2017년까지는 여성이 297명에 불과했다. 작년부터 늘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적은 이유는 여성들이 남성 독립운동가를 지원했던 활동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서훈을 받으려면 근거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 게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다”고 밝혔다.

이 토론회는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전시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3·1운동 100주년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속에 이름조차 없거나 있어도 후손들이 알지 못하는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흉상을 제작·전시하는 사업이다.
 

2018년까지 애족장 이상 받은 사람들

이번에 선정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박재복·신순호·어윤희·오건해·윤희순·이국영·임수명·연미당·박자혜·신정숙·이화숙 등 11명이다. 2018년까지 애족장 이상 서훈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성은 출가를 하면 호적이 달라져 논쟁 대상에 올랐으나 아버지·남편의 호적이 충북인 경우도 넓은 의미의 충북출신으로 보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흉상은 오는 11월 17일 충북미래여성플라자 1층에 전시된다.

박현순 충북도 여성가족정책관은 “그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록은 선택적으로 이뤄졌고, 역사속에서도 누락돼 왔다. 선양사업도 없었다. 충북의 자랑스러운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충북여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자 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전시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특히 충북과 관련있는 독립운동가는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아마 충북 출신은 아예 모르고, 유관순 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독립운동가 동상은 전국에 93개가 있고 그 중 7개가 여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7개 중에서도 4개가 유관순이고 나머지는 김마리아, 윤희순, 박차정이라는 것이다.

유영선 충북여성정책포럼 고문은 토론회에서 “독립운동은 남녀가 평등하게 시작했고 여성들의 확고한 의지와 자부심이 있었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1919년 여성들은 대한독립여자선언서를 발표했다. 8명의 여성이 연서를 했는데 김숙경 만이 독립운동가 황병길의 아내로 추정되고 나머지는 기록이 없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선언서를 작성하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독립운동 조직내에서 밥을 하거나, 군자금을 모으거나, 비밀통신 연락을 하는 등의 역할이 보조적인 것으로 취급돼 기록이 없는 점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꾸려간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여성독립운동가 선정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아버지나 남편, 또는 그 외 남성 독립운동가를 도와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마땅한 기록이 없어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유 고문은 이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1919년 상해판 독립신문 ‘여학생일기’라는 글에서 일본 경찰로부터 당한 성고문을 #미투로 고발한 것도 매우 획기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진 원인이 자궁과 방광 파열이었다는 사실은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여성 독립운동가 흔적 어디에?

충북도민들이 11명의 충북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문호경 독립큐레이터 문화기획자에 의하면 오건해는 서울 현충원, 신순호는 서울 현충원과 청주 가덕중, 윤희순은 춘천시 남면과 춘천시립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윤희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서울 서강교회, 박자혜는 청주 신채호 사당과 서울 인사동, 임수명은 서울 현충원과 서울 사직동에 흔적이 남아있다.

이 중 박자혜는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단재 연보에 단재가 41세 때 박자혜와 결혼했다는 것과 1990년에 받은 애족장이 전시돼 있을 뿐이다. 박자혜의 독립운동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단재 사당 부근에는 단재 동상이 있는데 박자혜는 책을 보는 단재 옆에 서있다. 주인공은 당연히 단재이고, 여기서도 박자혜에 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간호원을 거쳐 출산을 돕는 산파를 했다. 1919년 3월 10일에 조선총독부 부속병원의 조산원 및 간호원들을 동원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국공립병원의 동료들을 포섭해 태업을 주동하다 투옥된 바 있다. 박자혜가 한동안 산파를 했다는 서울 인사동 ‘박자혜 산파’ 터에 서울시가 안내문을 세울 계획이라고 하나 그 동안 박자혜는 여성독립운동가라기 보다 단재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충북도가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흉상을 제작하면서 작가를 공모하거나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추천하는 형식을 거치지 않은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모 씨는 “이런 작품은 다중이 보는 것이고, 한 번 제작해 놓으면 몇 십년 아니라 몇 백년까지도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해야 한다. 역사적 고증작업을 거쳐 사실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절차를 무시하고 대강 만들어내는 동상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이런 작업이 왜 필요한지 알리는 차원에서라도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작가를 추천받아 가장 알맞은 작가를 선정했다”고 답변했다.
 

“여성독립운동가 적극 발굴하고 기념관도 지어야”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여성독립운동가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고 해서 독립운동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공간이 작은 건 아니다. 한국근대사에서 여성을 당당한 역사의 일원으로 보고 학술적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작년부터 3·1운동이나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반드시 3개월 옥고를 치르지 않아도 포상받는 길이 열렸다. 충북 출신 중 묻혀 있는 사람이나 남편 호적에 입적돼 다른 지역 인물로 분류된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 선양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북 전체의 독립운동가를 아우르는 전시관 건립 필요성을 주장했다. 경북 안동에는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 역사교육과 지역 정체성 교육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충북은 신채호·신규식·신흥식·이상설·손병희·한봉수·손승억·황학수 등과 흉상으로 제작되는 11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외에 민금봉·민인숙·신창희·홍금자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어도 기념관이 없다.

박 교수는 또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도 주문했다. 그는 “2015년 신순호의 딸이 어머니, 외할머니 등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900여점의 자료를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고 특별전을 개최했다. 신순호는 충북의 독립운동가 가문 사람인데 딸이 경기도에 살아 거기 기증했다. 충북도가 후손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했다면 귀중한 자료를 받았을 것 아니냐”면서 아쉬워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도와 충북여성재단은 지난 23일 ‘여성사로 새로 쓰는 충북독립운동’ 토론회를 열었다.
충북도와 충북여성재단은 지난 23일 ‘여성사로 새로 쓰는 충북독립운동’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육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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