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6주년 특집' 직지보다 앞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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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6주년 특집' 직지보다 앞선 책?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09.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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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보물로 지정…원나라 과거수험서
전 소장자 故 조병순 씨 2006년부터 현존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주장
故 조병순 관장이 펴낸 한국서지학회 학술총서 ‘고려본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연구’에 수록된 자료
故 조병순 관장이 펴낸 한국서지학회 학술총서 ‘고려본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연구’에 수록된 자료

 

직지의 도시 청주시
보물 삼장문선의 출현

문화재청은 지난 5월 2일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新刊類編歷擧三場文選對策)’ 권 5~6을 보물로 지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언론들은 대부분 이 책이 보물로 지정됐다는 사실보도만 했는데 여기에는 대단한 ‘사건’이 숨어 있다.

이 책의 소장자는 고려본으로 추정되는 책과 조선본으로 추정되는 책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고, 둘 다 지정됐다. 그 중 고려시대 간행된 책은 직지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말이다. 이 점에서 청주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직지는 1377년에 간행됐으나 삼장문서 고려본은 1341~1370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보물 제2023호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이하 삼장문선)’ 권 5~6은 “원나라 유인초가 향시(鄕試)와 회시(會試) 그리고 전시(殿試)의 ‘삼장(三場)’에서 합격한 답안들을 주제별로 분류해 1341년 새롭게 편집한 책의 권5와 권6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일종의 과거수험서라고 한다. 권5는 다섯 번째, 권6은 여섯 번째에 해당되는 책을 말한다.

이어 “총 72권으로 편찬된 이 책에 대해서는 그동안 고려의 전래 기록과 실례가 증명되지 않았으나, 삼장문선이 알려짐에 따라 고려시대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향시는 지방에서 치른 과거 1차 시험이고, 회시는 초시 급제자가 서울에서 보는 2차 시험, 전시는 2차 시험 통과자들이 임금 앞에서 본 시험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 세 종류의 시험을 통틀어 ‘삼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또 이 책은 모두 금속활자로 인쇄됐고 일부 떨어져나간 게 있으나, 간행 당시의 서지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려본은 판심(版心)의 규격 등이 조선본과 다르고, 경의(敬意) 처리법의 적용과 권차(卷次, 고려본의 壬<임>을 조선본은 任<임>으로 오기)나 편자(編者, 고려본의 安 成<안 성>을 조선본은 成案<성안>으로 도치)의 표기에서 조선본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을 보인다”고 명시했다. 또 조선본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계미자는 계미년인 1403년(태종 3)에 주조해 1420년(세종 2) 경자자를 주조할 때까지 사용된 15세기 대표 금속활자라고 했다.

문화재청은 “이 책의 고려본과 조선본은 여말선초 금속활자 주조와 전승 현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교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사례이다. 아울러 원나라에서 시행된 과거시험 답안과 국내 전래 상황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 고려 말∼조선 초 금속활자 인쇄술을 살펴볼 수 있는 판본의 희소성 등을 종합해 볼 때 보물로서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 책의 전 소유자였던 고문서 연구가 故 조병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지난 2006년 삼장문선 연구를 한국서지학회 학술총서로 펴냈다. 그는 “고려본 삼장문선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서 1341~1370년 사이, 조선본 삼장문선은 1403~1420년 사이 간행됐다”고 썼다. 고려본은 원나라 책이 고려에 유입된 1341년을 상한선, 공민왕이 원나라와 외교를 끊고 명나라에 과거생을 파견했던 1370년을 하한선으로 상정했다고 한다.

조 전 관장은 지난 2006년부터 삼장문선 고려본이 현존하는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했으나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문화재 신청을 한 사람은 그의 아들이다. 조 전 관장은 생전에 최고의 고서 수집가로 불렸다. 서울에서 고서점 성암문고를 운영하던 그는 후에 성암고서박물관을 만들었다. 청주고인쇄박물관도 개관 초 성암문고에서 고문서를 여러 권 샀다고 한다. 전국 박물관치고 여기서 고서를 사지 않은 곳이 없다는 후문이다.

조 전 관장은 1975년 봄에 이 책을 입수한 이래 연구를 계속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삼장문선 두 권의 책이 내용은 같으나 활자체가 다르다는 점에 집중했고 일련의 연구논문을 ‘서지학보’에 발표했다.

하지만 조선본은 조선시대 주조된 계미자를 상당수 사용해 이견이 없지만, 고려본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서지학의 대가였던 故 천혜봉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금속활자인쇄사’라는 책에서 둘 다 조선시대 계미자로 두 번에 걸쳐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장문선을 보물로 지정한 문화재청 동산분과 문화재위원회도 최종 회의였던 3차 회의에서 위원들간 이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일부 위원들은 “고려시대에 관한 문헌에서 삼장문선을 출간했다는 기록이 없고 고려서적원 활자로 인쇄된 다른 문헌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더 연구한 뒤에 문화재로 지정하는 게 온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산분과 문화재위원회는 최종적으로 이 자료가 언제 국내에 들어와서 간행됐는지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고려 말 서적원의 금속활자와 조선초 계미자 주조에 대한 관련성을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는 희귀본이라 국가문화재로 지정한다고 결론지었다.

어쨌든 삼장문선 고려본과 조선본은 국가 보물로 지정됐다. 청주시는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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