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조국이 문재인 정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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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국이 문재인 정권을 살린다
  • 한덕현
  • 승인 2019.09.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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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조국-윤석열의 함수(函數)

①문재인대통령 개별기록관 ②검찰수사 공보준칙개정 ③“가족의혹 수사검사 법 지키면 인사상 불이익 없을 것"(조국 발언).

이른바 근자의 조국 정국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관찰한 뉴스들이다. 이 것들의 개별 파장이 궁금했다기보다는 릴레이 삭발을 들고 나온 자유한국당이 학수고대하고 있을 문재인 정권의 폭망에 대한 그 개연성을 짚어보기 위해서다.

다행스럽게도 대통령 개별기록관은 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설령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 통합기록관이 포화상태라고 해도 문 대통령 개별 기록관 얘기는 누구보다도 현 정권의 지지자들한테 특히 당혹스러웠다. 때가 아닐뿐더러 그 것이 안기는 뉘앙스가 너무 음습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정권도 끝났다고 독백한 이들이 많았다.

물론 임기 이후에는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일궈내고 일본 관계에서도 제대로된 역사정립을 성공시킨다면 개별 기록관이 아니라 국가적 우상화도 부족할 판이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함은 남는다. 처음 이런 기획안을 입안한 사람이 궁금한 것이다. 그가 청와대 참모가 됐든 정부부처의 요인이 됐든 당장 목을 쳐야 정상이다. 읍참마속은 바로 이런 것이다. 권력의 망조는 주군의 사타구니나 긁어주는 부나비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두고 역사인식에선 악마의 유혹이라고 한다.

검찰수사의 공보준칙 개정 역시 그 절박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조국정국에서 꺼낼 카드는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현행의 형법과 그 준칙을 제대로만 지킨다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지금의 관행적인 피의사실 유포는 상처투성이의 조국이 아니라 국회에서 먼저 법논리로 논의하는게 맞다. 다만, 유명인을 한 순간에 전 국민의 공적으로 추락시키는 포토라인 제도는 하루 속히 손을 볼 필요가 있다.

검찰수사의 공보준칙이 집권세력의 잣대로 다뤄지는 건 자칫 언론에도 받아쓰기만을 강요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더군다나 ‘하늘아래 두개의 태양은 없다’는 권력의 독점 속성과 불리한 사안에 대해선 일단 감추고 내부 단속부터 채근하는 권력의 내성을 고려한다면 어쨌든 언론은 끊임없이 검찰 수사에 코를 들이밀어야 하기에 공보준칙이 특정인과 특정 세력의 협의(狹義)로 다뤄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법을 지키면 인사상 불이익은 없다는 조국의 말은 목하 많은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안기는 본인의 언행불일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것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화법은 소위 선수들에게조차 “너 까불면 죽인다”로 들릴 뿐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일단 기가 꺾인 사람들이 이를 만회하려면 조심과 조신의 자세로 시간을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이게 아닐 경우 상황은 자꾸 더 꼬이게 마련이다. 하려는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는 '머피의 법칙'도 결국은 조바심의 발로이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문재인-조국-윤석열의 향후 관계가 과연 어떻게 정리되느냐다. 현재로선 예단이 쉽지않은 화두이지만 나름 이렇게 진단해 본다. 우선 청문회 과정중에 조국 의혹에 대해 급거 수사에 나선 윤석열의 속내는 분명히 있다. 나는 그 것을 조국은 하자가 있으니 청문회 이후에 임명하지 말하는 문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 메시지라고 확신한다. 그렇게만 되면 자신에게 항상 붙어다니는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를 지켜낼 수 있고 향후 임기동안에도 이 것의 순기능, 정권의 법치를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를 중시하는 대통령은 소문만으로 임명을 안 할 경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강행했고 세 사람 사이의 함수는 이 때부터 아주 미묘하게 됐다.

하지만 이 역시 상식으로 풀어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원칙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모독은 ‘변절’과 ‘배신’이라는 딱지다. 어쨌든 윤석열은 문 대통령과 조국의 신임으로 검찰의 수장이 되었고 표면적으로는 지금 자신을 믿어준 은인들한테 배신하는 모양새가 됐다. 답은 여기에 있다. 정치에는 뜻이 없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그 ‘원칙’이 진심이라면 윤석열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배신자라는 덤터기다. 자칫하면 평생 주홍글씨로 남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윤석열이 구사할 수 있는 카드는 역대 정권에서 반복된 이른바 청와대와 검찰의 ‘연립정권’을 깨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은 사냥개가 되어 지난 권력을 마치 도륙하듯 짓밟아 살아있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무소불위라는 검찰권력 축소와 정치·정권으로부터의 검찰권 독립으로 상징되는 검찰개혁은 실은 이같은 연립정권의 고리를 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검찰권을 들이대야 하고 지금 윤석열이 그 중심에 서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의 단계는 무엇일까. 조국 문제를 말 그대로 법대로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조국의 거취도 여기에 따라 결정된다. 군대도 안간 황교안이 삭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끝내 조국이 낙마한다고 해도 문재인 정권으로선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도 검찰의 메스를 당함으로써 검찰의 정치화라는 악순환을 종식하고 궁극적으로 검찰개혁이라는 소기의 성과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국가, 나라다운 국가를 국민들에게 더 어필할 수 있고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된다는 집권3년차의 저주도 피하게 된다. 그러면 윤석열은 배신자가 아니라 히어로가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용어로 2차대전의 홀로코스트 같은 만행과 악행은 광신자나 인격장애인들이 아닌 국가와 체제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이를 현재의 조국사태에 빗대면 이해는 더욱 명쾌해진다. 조국 가족과 친인척들의 일탈은 그들의 금수저 사회에서는 그저 보통의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죄책감도 없다. 우리나라 기득권 사회의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국사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진보와 혁신, 개혁등으로 상대와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쟁투의 민주주의가 나라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공존의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똑같은 놈들이라면 이제 이념보다는 도덕과 상식의 법치주의를 곧추세우고 상대에 대한 설득과 깨우침을 앞세워야 한다.

이같은 공존과 포용의 정치를 정적으로부터 지상최대의 탄압을 받았다는 김대중이 처음 시도했고, 사실 선한 인격의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완성시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아직까지는 빗나갔다. 그 결과 국민은 두쪽으로 갈라졌고 이 후유증은 앞으로 대한민국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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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 2019-09-18 14:52:09
뭔소리를 하는건지 ,,,,, 지금 검찰이 개지랄을 떨고 있어요, 자기들 권력 놓지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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