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사회와 뜨거워지는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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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사회와 뜨거워지는 지구
  • 충청리뷰
  • 승인 2019.09.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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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승 우 풀뿌리자치연구소‘이음’ 연구위원
하 승 우 풀뿌리자치연구소‘이음’ 연구위원

 

금수저, 흙수저가 문제되던 시기는 이미 있었다. 그 전에도 로스쿨이나 공무원 특채를 놓고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일었다. 모르던 일도 아니었고,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후보자의 가족들은 후보만큼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공직자 개인의 능력을 봐야지 왜 가족이나 친척들까지 검증하려고 하냐는 서구적 감각은 학연, 지연, 혈연의 연고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국대전’이라 불릴 만큼 이번 논란은 매우 치열했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건 아마도 ‘386세대’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 같다. 물론 386세대도 한참 우려먹은 이야기 같다. 다만 과거에는 386이라는 호명이 진보를 대표했다면 지금은 개혁의 지지부진함과 내부의 기득권화를 뜻하는 말로 변하고 있다.

사실 386으로 뭉뚱그려져온 세대는 이질적이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도입되었을 때 이미 한국사회는 큰 균열을 경험했다. 살아남고 성공한 386과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로 전락한 386은 더 이상 같은 세대일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바뀌겠지,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라던 소소한 희망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서열화된 현실 앞에 무너졌다. 그리고 더 나빠진 세상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세대는 이 기대할 것 없는 사회를 바꿀 수도 없고 도피할 수도 없어 하염없이 분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리얼미터가 발표한 ‘2018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를 보면,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다. 매년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국회의 신뢰도는 1.8%로 신뢰를 논하기조차 어렵다. 검찰의 신뢰도 2.0%, 경찰 2.7%, 군대 3.2%, 법원의 신뢰도도 5.9%이다. 종교단체 3.3%, 노동조합 4.0%, 언론 6.8%, 대기업 6.9%,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도 10.9%이다.

즉 한국 시민 10명 중 9명은 정부만이 아니라 언론, 종교, 시민단체, 기업 등 그 어떤 기관도 신뢰하지 않는다. 2019년 9월 한국의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는 몇 %일까? 이런 사회에서 시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조국이 한국사회 분열의 상징이라면, 그레타 툰베리라는 인물은 전지구적인 단결의 상징이다. 스웨덴에 사는 그레타 툰베리는 정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며 학교 등교를 거부했고, 지금은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에서 기후정상회담에 참석할 정치인들을 맞이하고 있다(한국에서도 『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2050년까지 배출량을 0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모든 정부가 수립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회는 조각조각 깨지고 있는데, 우리가 맞이할 위기는 지구적이다. 다가오는 9월 21일은 정부대응을 촉구하는 기후파업의 날이고 9월 27일에는 전세계의 청소년들이 기후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가 내일 당장 멸망하지는 않겠지만 실은 서서히 멸망하는 게 인류에게 더 끔찍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건 가장 약한 사람들일 테고, 이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사람들일 것이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한 끔찍한 경쟁에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 때에도 여유롭게 살벌한 경기장을 관전할 것이다(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그들도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결과의 평등은 존재하지만).

누적된 불신이 사회의 신뢰를 붕괴시키듯이, 누적된 온실가스는 지구생태계를 붕괴시킨다. 용서와 적극적인 만남이 사회관계를 복원할 수 있지만, 한번 붕괴된 생태계는 그렇게 복원되지 못한다. 신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지금’ 사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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