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심리치료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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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심리치료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 충청리뷰
  • 승인 2019.09.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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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구 효 진 임상심리사 심리전문서점 ‘앨리스의 별별책방’ 대표
구 효 진 임상심리사 심리전문서점 ‘앨리스의 별별책방’ 대표

 

<사연> 나만의 일을 갖고 싶어 남편과 상의 끝에 복직대신 사직서를 제출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은 공부이지만 기다려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3년째 자격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어려운 길인 줄 알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내가 정말 원했던 공부인가?’, ‘내가 할 수 없는 분야인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고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가고 계시니 조언을 좀 얻고 싶어 왔습니다.

최근 들어 삶의 진짜 의미를 묻는 질문을 상담실 밖 곳곳에서 마주한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노래가사, 영화, 방송매체 등에서 ‘진짜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다루는 내용을 자주 만나게 된다. 고도의 지식과 대량의 데이터로 최고의 기술들이 융합되어 더욱 획기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소위말해 4차 산업시대에 산업이 아닌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 더욱 상승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산업화 시대는 ‘투자 대비 효과’를 근간에 두고 효용과 효율 최대화를 위해 사회전반의 산업, 경영, 정치, 교육, 문화 등 그때마다 도구나 수단을 달리했다. 이러한 방향성은 ‘놀이’마저도 이윤창출을 목적에 둬 일로 전락시키고 더 이상 즐거움과 충만함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저 노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생기고, 무언가를 계속해야만 하는 강박적인 사고를 지닌 채 오늘을 살게 되었다.

필자는 효과를 증대하는 도구적 활동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산업과 사회의 급속한 발달은 개인의 생각, 감정, 행동을 인식할 시간을 그다지 허락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처리되지 못한 채 누적된 내적경험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나타나고 이는 일상에서의 충동, 무기력, 불안 등을 다루는데 취약하게 하는데 한 예로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위해 쇼핑을 하거나 폭식, 폭음을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인해 또 다른 불안감을 조성하게 되어 몸은 늘 긴장해 있고 깊고 편안한 수면을 누리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 될 편지
심리학은 철학에 근간을 두고 있어 문화와 역사 속 인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중추신경계와 유전자, 호르몬으로 구성된 생리적 개체로의 인간도 다룬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모두 발을 담고 있어 실로 매우 흥미로운 학문이다. 필자는 공학자의 이력을 가진 심리학자이다. 쓸모를 따져 효용 가치를 중요시 여겼던 공학자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들 -놀고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등-의 쓸모에 대해 검토한다.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위고 펴냄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위고 펴냄

 

그리고 내담자의 뒤틀린 주관적 진실들로 인해 삶이 힘겹게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부산물이나 버려지는 로스를 줄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에서 왜곡이나 오류를 줄여 현실검증력을 높이고, 지혜를 담은 신중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가르치면서 30여 년 동안 개인 상담실을 운영해온 저자는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얻은 관계와 삶에 대한 통찰을 후배 치료사에게 편지글로 남기고자 했다. 책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는 이제 시작하는 심리치료사들은 물론이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통찰의 편지이다.

저자는 정신적 욕구를 무시하고 피상적으로 살라고 부추기는 현대 문명에 반해서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합시키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오래됨’과 ‘아름다움’을 연결하라고 한다. 새로운 나를 찾는 것에만 급급하여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해보자. 자신을 찾고 계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리적·사회적으로 성숙된 인간으로 성찰하며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테니 말이다.

● 모든 사연은 실제 상담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내담자의 동의하에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구 효 진
임상심리사
심리전문서점 ‘앨리스의 별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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