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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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말이 없다
  • 한덕현
  • 승인 2019.09.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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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트럼프는 트위터의 글 한 줄로 정부 요직을 바꾼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세계 최강국의 위세를 배경으로 기세등등하던 이들이 트럼프의 말 한 마디로 쫓겨나는 것을 보면 아무리 권력이라고는 하지만 허접하기 그지 없다.

트럼프의 언행은 극도로 권위적이다. 부동산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으키기까지 오로지 자기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통했던 지난 삶의 내공인지는 몰라도 늘 본인이 최고이고 언제나 자기가 주인공이다. 어느 땐 기분 내키는대로 상대국가의 최고 지도자까지 들었다 놨다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들의 치기 수준이다. 그런데도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세계를 움직이고 긴장시킨다.

이럴 때 퍼뜩 떠오르는 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못마땅함이다. 같잖게 느껴지는 지도자와 이를 따르며 환호하는 뭇 대중들, 그리고 이 것들에 의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가 이끌려진다는 사실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도자라고 해서 머리가 좋고 자질이 꼭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그 흔한 속설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어쨌든 요즘 문뜩 문뜩 엄습하는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의 이성, 그리고 이 것의 힘이라는 게 참 덧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전방위적 압수수색이 무려 70여회나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나로서는 처음부터 조국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이 지경이면 조국과 그 가족이 참 안 됐다. 압수수색만 70여 회라니? 보통 사람들이 이 정도면 한계를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다. 검찰 소환 한 번에 목숨을 끊은 이들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조국을 잡아들일만한 건이 아직 없는 것인지, 아니면 내친 김에 확실하게 마무리할 의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 딸의 입학관련 의혹이 자꾸 별건 수사로 확대되는 것같아 우려스럽다.

개인적으로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에 부정적이었던 건 앞서 언급한 ‘리더십’이라는 것에 수반되는 타이밍과 그 역할의 효용성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 검찰 개혁의 본질은 현학적 논리보다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에 달렸다고 판단했다. 이미 교수시절부터 각종 강연과 저서로 대중의 스타가 된데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엔 이미지의 급상승을 꾀했더라도 오히려 이 것으로 인해 막상 실제 전장(戰場)에선 역동성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예고된 혁명이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게 역사의 교훈 아니던가.

 

작금의 조국 사태는 여러모로 이제까지의 국가적 관례와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그 추이가 이만저만 궁금한 게 아니다. 검찰의 자기 인사권자에 대한 초유의 강제수사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현 정권에 의해 검찰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지목돼 임명된 윤석열이 어느덧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맞서는 모양새가 된 것이 그렇다. 흔히 정권으로부터의 검찰독립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검찰 조직은 엄연히 국가 행정조직의 편제에 불과하기에 사실 검찰총장의 생사여탈은 현 정권이 쥐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의중이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혹자는 윤석열 임명 당시 살아있는 권력에도 추상같은 검찰권을 행사하라고 주문한 것이 부메랑이 되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동안의 권력구조 상식을 깨는 건 분명하다. 대통령의 의중 뿐만 아니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속내도 쉽게 점칠 수가 없다. 평소 그에게 따라다니는 ‘원칙주의자’나 ‘사람한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는 상황마다 사람들의 의표를 찔렀다.

하지만 이같은 행동은 사안에 대한 국민인식의 긴장감 못지않게 본인의 위험성까지 내포한다. 이른바 권력의 역린(逆鱗)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선 윤석열에 대해 ‘배신자’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국 수사가 어떻게 귀결되든 만약 윤석열에게 ‘배신자’ 딱지가 붙여지면 그의 앞으로 인생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정권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고 트럼프라면 단칼에 결딴날 사안이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이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손을 대는 것이나 또 이 와중에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관통해 왔던 한국적 국가리더십에 모종의 변화조짐이 일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사실이다. 이 것을 꼭 청와대와 검찰, 여당과 야당 사이의 역학관계로만 볼 게 아니라 시대적 추세에 따른 변화조짐으로 한 번 따져 볼 필요는 있다.

아주 오래전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이 언뜻 떠올랐다. ‘리더가 죽어야 리더십이 산다’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당시에 공감했던 부분이 지금도 잘 정리되어 있다. 유교와 군사정권, 절대적 대통령제, 가부장적 문화,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묶이는 권위주의 이 것들의 결정판인 한국적 리더십의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스마트 시대에는 이같은 리더십이 죽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하여 두려움이 아닌 신뢰와 믿음으로, 권위가 아닌 도덕과 원칙으로, 지위가 아닌 전문성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오랜 역사동안 우리나라를 짓눌러온 제왕적 카리스마, 계급적 카리스마, 스펙의 카리스마, 집단주의적 카리스마, 두려움의 카리스마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조국 한 사람 때문에 마치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난리를 치고, 아무리 무소불위의 검찰이라지만 한 사람에 대해 무려 70여 차례나 압수수색을 하고, 이에 흔들리며 국회와 여당 야당이 춤을 추는가 하면, 국민들도 진보와 보수로 딱 갈려 반목하는 지금의 현실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망국적 국가리더십의 더러운 부산물이다. 이거야말로 적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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