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자유인 연방희, 이번에 제대로 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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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인 연방희, 이번에 제대로 매였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10.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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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산림경영인·시민운동가에 천연염색까지 하는 사람
청주 도시공원거버넌스 공동의장으로 현안 해결 위해 고심 중
사진/ 육성준 기자

***본지는 10월 첫째주에 '홍강희가 만났습니다' 코너를 신설했다. 첫 번째 인물로 연방희 님을 선정했다.

청주에 사는 연방희(66) 씨는 그냥 ‘방희 형’이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 청주지역에서는 웬만하면 다 형, 동생으로 통한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방희 형’을 아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는 세무사이자 나무를 심는 산림경영인이다. 또 천연염색을 하는 예술가이며 시민운동가다. 세무사로 밥벌이를 하고, 염색은 재미로 하는 일이다. 시민운동은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다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다고 했다.

청주에서는 방희 형처럼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늘 쾌활하고 씩씩한데다 어디 매여있는 사람같지가 않다. 그는 날카로운 지적도 서슴지 않는다. 욕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물론 사람 봐가면서 하지만. 옷차림을 봐도 자유인이다. 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패션이라고 할까. 그래서 근엄한 분들은 속으로 이 사람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그는 최근 ‘청주시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난개발대책 거버넌스’(이하 도시공원거버넌스) 공동의장을 맡아 힘든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문제라 적잖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를 의장으로 칭하기로 한다.

청주시와 도시공원지키기시민대책위는 한동안 도시공원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내년 7월 1일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도시공원에서 해제되는 공원을 개발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를 놓고 양 측이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특히 구룡공원 보존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대두됐다. 이후 녹색청주협의회는 지난 8월 도시공원거버넌스를 구성한다. 이미 앞서 활동했던 도시공원거버넌스는 안 하느니만 못한 채로 막을 내렸고 다시 결성한 것.

도시공원거버넌스는 지난 8월 19일 첫 회의를 한 이래 매주 월요일마다 열고 있다. 청주시, 시민대책위, 전문가, 시의원 등 다양한 사람 15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기간은 오는 11월 19일까지 3개월이다. 여기서는 도시공원뿐 아니라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전반을 다룬다.

지난 9월 30일 열린 거버넌스 6차 회의에서는 구룡공원의 보존과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을 내기로 했다. 이 날 거버넌스는 5시간의 마라톤회의를 거쳐 민간개발 사업제안서가 제출된 구룡공원 1구역 가운데 제1지구는 보존하고 제2지구는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 제2지구 중 생태민감지역은 보존하되 민간 개발업자의 수익성을 위해 개발 구역을 넓히는 방안도 허용했다. 거버넌스는 시민대책위가 일부 양보해 합의안을 내놨다고 했으나 민간개발업자들이 반대했다.

8월 19일 열린 도시공원거버넌스 첫 회의. 사진/ 청주시
8월 19일 열린 도시공원거버넌스 첫 회의. 사진/ 청주시

 

- 청주시의 핫이슈인 도시공원 문제를 결정하는 도시공원거버넌스 공동의장으로 책임감이 막중할 것 같다. 회의 한 번 하면 보통 4시간이라고 하던데.

“위원이 15명이고, 이 중 6명이 TF에서 활동한다. TF는 사전에 협의해서 안건을 제안하기 때문에 매일 회의한다. 이 사람들이 힘들 것이다. 결정은 투표가 아닌 합의제 방식으로 한다. 그래서 충분한 대화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지난 6차 회의 때 일단 구룡공원 문제를 결정했다. 이제 공은 개발업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들이 우리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또 그는 “내가 의장이라 말을 하고 싶어도 참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문제가 현안으로 닥친 건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이 2020년 7월이라고 정해져 있었는데도 이를 준비하지 않은 역대 시장들 책임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공동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진행하는데 원칙은 무엇인가?

“정해진 위원 외에 주민, 토지주, 시민 등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회의 때마다 여러 사람들이 온다. 말을 막으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말을 한 뒤에 다음 사람이 바로 반박하지 못하게 했다. 이 회의는 둘이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논쟁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므로. 누구든지 책임있는 발언을 하도록 속기사 2명도 참여시켰다. 청주시 홈페이지에 회의록도 공개한다.”

- 그동안 청주시와 시민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싸웠는데

“공무원은 공공재를 가지고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고, 시민은 서비스의 수요자들이다. 둘이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이지 서로 적대시 할 일이 아니다. 공무원은 시민들에게 100%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돈, 사람, 시간이 없어 못할 수 있다. 이를 죄송하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는 안된다’고 하지 말고 ‘~를 하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우리 회의에 와서는 안 싸운다.”

처음 인터뷰는 9월 27일 연 의장의 세무사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시작했으나 다 못했다. 29일 일요일 그는 진천군 문백면 공예마을에 있었다. 여기에서 집 짓고 고래실 염색교실을 운영한다. 그는 주말에만 청주 집에 가고 평일에는 이 곳에서 혼자 지낸다. 나는 이 집에 몇 번 가본 터라 당장 달려갔다. 그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자유인 그 자체였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 나무 타는 냄새가 기막히게 좋았다. 공간이 바뀌니 질문도 달라졌다.

진천 집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
진천 집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 사진/ 홍강희 기자

 

- 시골에 이런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다. 전원생활하고 온돌방에서 자고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불 때면 힘들다. 누가 해줘야 좋은거다. 컴컴한 밤 9시에 들어와도 불을 때야 한다. 전원주택도 내가 갖고 있으면 일이 너무 많다. 전원주택 가진 사람 5명쯤 알고 있으면 그게 최고다.” 역시 그 다운 답변이었다. 지난 2009년 예술가들은 진천에 터를 잡고 각자 작업실겸 집을 지었다. 현재 27가구가 들어섰고 진천공예사업협동조합을 구성했다. 오지랖이 넓은 연 의장은 이 협동조합 이사장이다.

- 천연염색은 어떻게 시작했나?

“1990년 문화재보호재단에서 하는 전통공예건축학교 대목반에 다녔다. 염색을 배워보고 싶던 차에 국립박물관에서 천연염색 강좌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담당 직원에게 매일 문의전화를 했다. 매일 하니 그 사람이 놀라 강좌 일정이 잡히면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실제 전화가 왔다. 여기서 염색을 배운 뒤 전국을 다니며 염색 하는 걸 구경했다. 테니스를 배우려고 해도 3개월은 해야 감이 잡히고, 도자기 만들기는 더 오래 배워야 하는데 염색은 당장 완성품을 볼 수 있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워 대중적이고 실용적이다. 재미도 있다.”

그가 지난 2001년 문을 연 고래실 염색교실 졸업생은 130명이나 된다. 3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해서 6회까지 마쳤다. 매주 목요일 이 곳에서 염색교실이 열린다.

- 시민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

“나는 보수파였다. 공수부대 특전사 출신에 재향군인회 감사를 10년이나 했다. 진정한 보수파가 없으니 진보로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다함께 잘살자는 생각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충북산악연맹 두 단체에서만 대표를 했는데 주변에서는 혼자 다 하는줄 안다. 내가 얼굴이 크고 목소리가 크다보니 이런 소리를 듣는다.”

- 요즘은 꽃과 나무를 심는다고 하던데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야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이 먹으면 찾는 사람이 없어진다. 며느리도 안 놀러오는 시대다. 그런데 내가 염색을 가르치니 젊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요즘에는 내 고향 증평군 도안면 산 7000평에 개복숭아를 심고 있다. 2025년까지 심어 꽃을 피울 것이다.”

- 페이스북에 열심히 글과 사진을 올린다.

“관심이 많다. 이런 것을 안하면 도태된다.”

- 항상 웃고 씩씩한 걸 보면 고민이 없을 것 같다.

“고민이 있다. 나의 주관심사는 노후문제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 이다. 요즘 이 두 가지를 많이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을 즐겁게 지내고 싶다. 내일 때문에 오늘을 포기하기는 싫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985년에 세무사를 개업했다. 사무실은 충북도청 정문 앞에 있다. 그렇게 다니면서 언제 세무사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직원들이 다 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가 세무사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연 의장은 최근 부인이 새 밥솥을 진천 집에 갖다놨다며 청주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인이 평생 가사노동을 했는데 더 하게 할 수 없어 자발적으로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돈 벌어다주는데 집까지 나갔으니 최고의 남편이 아니냐는 것이다. 역시 재미있는 사람이다.

진천 집 전경
진천 집 전경. 사진/ 홍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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