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기능 없는 ‘도서관’이 혁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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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기능 없는 ‘도서관’이 혁신인가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9.10.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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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조창5층 열린도서관 매달 운영비 7600만원 삭감된 이유는
성격 애매모호…시 예산 지원하려면 “정체성부터 다시 정립”

문화제조창C 미스테리
도서관 아닌 도서관

 

지난달 30일 청주시의회 예결위원회엔 문화제조창C(옛 연초제조창) 5층에 건립되는 열린도서관운영비 예산안이 올라왔다. 매월 7600만 씩 3개월 치 총 22800만원이었다. 충북청주경실련은 예결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피켓을 들고 열린도서관 관리 운영비를 전액 삭감하라. 시민 공론화가 우선이다고 외쳤다.

결국 이날 예결위는 예산을 삭감했다. 황당하게도 청주시는 도서관 운영 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안을 먼저 올렸다.

청주시는 올해 초 문화제조창C 5층에 도서관을 운영하겠다면서 도시재생과, 도서관평생학습본부, 정책기획과를 소집해 회의를 시작한다. 한범덕 시장이 도서관 혁신모델을 만들라, 일본의 다케오시립도서관을 운영하는 츠타야 서점처럼 새로운 혁신안을 만들라며 구체적인 주문을 했기 때문이다. 시장, 시의회, 관계부서 공무원들은 줄줄이 벤치마킹 명목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문화제조창C 5층에 들어서는 열린도서관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 전경. 책들이 아직 꽂혀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문화제조창C 5층에 들어서는 열린도서관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 전경. 책들이 아직 꽂혀지지 못하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서점이 도서관을 맡으라고?

 

그래서 내놓은 안이 서점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 이 도서관의 이름이 바로 열린도서관이다. 열린도서관이 위치하게 되는 문화제조창C 5층에는 서점1(111), 서점2(54), 카페, 공연장,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이 한 공간에 들어선다.

청주시는 입점하는 서점에 대해 도서관 운영을 맡기는 대가로 일종의 손실금을 보전하겠다고 나선다. 관리운영비로 매달 7600만원과 현물 책 지원 500만원을 약속했다. 지난 6월 이 안은 청주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를 통과한다.

설상가상으로 전두환 일가가 소유한 오프라인 서점 북스리브로의 입점이 유력시 됐지만 시민사회 및 지역서점조합의 반발로 현재 무산된 상태다. 청주시는 지역서점조합과 서점 임대료 및 운영안을 조정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그 사이 예산안도 7600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줄었다.

원래는 서점에 같은 공간의 공연장까지 임대하려고 했지만 청주시가 직영하기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주시는 이를 무시하고 기존대로 7600만원으로 예산안을 올렸다. 이에 대해 청주시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처음 예산을 7600만원으로 올렸지만 의견을 수렴해 운영비 예산을 5700만원으로 줄였다. 예산안이 통과되면 차액은 반납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결국 예산을 부풀려 올리고, 나중에 돌려받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성격 또한 아리송하다. 열린도서관이 위치한 문화제조창C의 건물주인은부동산 투자회사인 리츠다. 청주시가 2017년 본관건물을 현물출자하고, LH토지공사, 주택보증기금(HUG)이 출자해 특수목적법인인 리츠를 세운다. 이로써 건물주인은 청주시에서 리츠로 바뀐다. 따라서 청주시는 이곳에 도서관을 세워 운영한다고 해도 건물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공공도서관이 될 수 없다. 형태는 사립이지만 세금이 지원되니까 공공도서관이 된다는 논리다.

지난달 30일 충북청주경실련은 청주시의회 앞에서 “열린도서관을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하라”며 피켓시위를 했다.
지난달 30일 충북청주경실련은 청주시의회 앞에서 “열린도서관을 원점에서부터 재논의하라”며 피켓시위를 했다.

 

청주시는 이 곳이 사립공공도서관이며 도시재생법에 의거해 도서관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서관법에 따르면 이 곳은 공공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의 주요기능 중에 하나가 대출이다. 열린도서관은 현재 대출기능이 없고 열람만 가능하다. 이에 대해 도서관 전문가들은 이미 청주시 관계자들에게 이 곳은 도서관이라고 볼 수 없다. 대출기능이 없다면 도서관법에서 규정한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의 장서들은 청주시의 재산이고, 등록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다른 도서관들과 상호대차서비스가 돼야 하는데 이 요건을 다 맞추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영경 청주시의원은 청주시가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지원할 때도 대출 건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대출이 되지 않는 도서관을 공공도서관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 세금이 투입되는 도서관이라면 대출기능을 비롯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천식 청주시도서관평생학습본부장은 향후 대출 서비스를 고려해보겠다. 대출 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약 6억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확답은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공공도서관으로 볼 수 없다

 

청주시는 여전히 서점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청주지역서점조합 임준순 조합장은 조합차원에서 도서관과 서점을 같이 운영하는 안을 고민하다가 도서관 운영은 무리라고 판단해 포기했다. 무엇보다도 열린도서관의 성격이 애매모호하다. 나중에 시민들이 대출을 원한다고 하면 대출을 해줘야 하는 데 이는 개별 기업이 맡아서 할 수가 없다. 개인정보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시에서 이러한 고민을 세세하게 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서관 운영은 포기하고, 평수가 적은 서점2(54)에 대해서는 조합 차원이 아닌 개별 서점에서 조건이 맞으면 입점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청주시가 열린도서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일을 추진해왔다는 것에 있다.

청주시 박철완 도시교통국장은 시장 지시로 사업을 추진한 것보단 도서관 혁신을 고민하다보니 열린도서관 개념이 나왔다. 만약 지역서점조합이 서점운영을 포기한다면 또 다른 서점사업자를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점 공간도 열린도서관으로 운영할 것이다. 하지만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인구규모에 비해 도서관(13)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위탁자를 구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유영경 의원은 공공도서관이고, 세금이 지원된다면 직영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 또다른 위탁자를 구한다면 여기에 지역사회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다. 열린도서관의 운영방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주시는 지금 서점 사업자를 구하는 데 힘쓸 게 아니라 열린도서관의 정의 및 운영방안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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