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라고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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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라고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 충청리뷰
  • 승인 2019.10.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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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원 근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
오 원 근 법무법인 ‘청주로’ 변호사

 

법원과 검찰은 인권의 최후 보루다. 그런데 우리의 법원과 검찰은 오히려 과거 오랜 기간 독재정권에 부역하며 일반시민의 인권을 짓밟는데 동참하였다.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1971년 대선에서 세 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선전하자, 1972년 10월 비상조치로 헌정을 중단시키고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헌법의 근본이념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유신헌법은 그러한 이념을 무시한 초헌법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국민이 아닌 독재자의 장기집권을 위한 것이었다.

1973년 10월부터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중심으로 유신 반대투쟁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그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하면서 학생, 정치인 등 180여명을 무더기로 기소하였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사형, 무기징역, 징역 15~20년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1974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국제법학자회는 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2012년 9월 6일,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 긴급조치법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사건 결심공판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임은정 검사는 무죄구형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

나는 신문에서 임 검사가 법정에서 한 말을 읽으면서 가슴이 무척 뜨거워졌다. 독재정권에 맞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과 그 가족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였을 삶, 그 삶을 진실 그대로 가슴으로 읽어내어 이를 법정에서 뜨겁게 토해낸 임 검사의 용기에 나도 모르게 후끈 달아오른 것이다. 그러나 내 다른 쪽에서는 지난 날 민주화를 위한 싸움에 함께하지 못하고, 또 한때 검사로 있으면서 임 검사와 같은 용기를 내지 못한 비겁함이 스스로를 더 달아오르게 하였다.

“검사라고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검사들 사이에 하는 말인데, 잘 나가는 검사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특수부, 공안부, 대검, 법무부에 근무하는 검사들을 잘 나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검사들이 그런 자리에 가려 한다. 자리에 욕심을 내다보면 무리수가 생긴다.

2002년 10월 한 검사실에서 조사 받던 피의자가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2009년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1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모욕주기 수사를 하면서 끝내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공안통이던 장호중 전 검사장은 국정원에 파견되어 있을 당시인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하자 가짜 사무실을 마련해 가짜 서류를 비치하는 등의 행위를 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임은정 검사는 그런 자리가 전혀 탐나지 않았다. 진실과 정의를 밝히는데 그런 욕심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임 검사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거세지는 지금도, 검찰 안에서 거의 혼자 외롭게 싸우고 있다. 임 검사는 지난 5일 국감장에서 “검사가 법과 원칙이 아닌 '상급자의 명령'을 실천하는 데에 질주했기 때문에 검찰공화국이 됐다”며 “제발 검찰 공화국의 폭주를 막아 달라”고 했다. 그는 검찰 조직 내에서 검사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힘겨운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힘 있는 권력에 부역하고 침묵하는 것은 쉽다. 잘못되었더라도 조직이기주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부역과 침묵, 조직이기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아무나 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다. 검사라고 정말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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