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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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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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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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판화가 캐테 콜비츠의 책 『캐테 콜비츠』
정재홍 수필가
정재홍 수필가

 

도서출판 운디네의 책 『캐테 콜비츠』는 양장본입니다. 자켓도 없고요, 표지에는 제목도 없고 저자도 없고 옮긴이의 이름도 없고 출판사 표식 또한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전쟁에 반대한다’는 제목을 갖고 있는 작품만이 강렬하게 흑백 톤으로 오롯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책은 80여 점의 작품과 작품해설을 주제로 재편집해서 예술가의 면면을 부각시켰습니다. 장르의 특성상 서로 다른 내용들이 연대기처럼 나란히 기록되게 마련인 일기를 여기서는 각각 주제별로 묶고 관련된 내용을 엮었습니다. 캐테 콜비츠가 자신의 삶에 주어진 다양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그 사실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이 평이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 편집했습니다. 그 당시 발행인의 출간 의도는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담당하려 한다” <전쟁> 연작을 발표하면서 캐테 콜비츠가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캐테 콜비츠는 독일에서 1867년 7월8일 태어났으며 1945년 4월22일 사망했습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판화가이며 민중화가입니다. 격동의 시기에 억압받는 민중, 도시 하층민, 전쟁 피해자들의 생활을 설득력있게 표현하며 사회의 부조리함과 인간 실존의 문제에 몰입합니다.

그는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던 20세기 초 유럽 예술계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한가운데를 응시합니다. 거칠고 생생하게 판각된 작품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의 깊이를 그려내어 보는 이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깁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동판화가인 루돌프 마우어와 화가 에밀 나이데에게서 미술을 배웠습니다. 18세에 베를린 여자미술학교를 다니는데 그 때 막스 클링거의 판화 연작 <어떤 인생>을 보고 깊이 감명받으면서, 이후 회화와 함께 판화를 공부합니다. 판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1세에 뮌헨 여자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캐테 콜비츠 전옥례 옮김 운디네 펴냄
캐테 콜비츠 전옥례 옮김 운디네 펴냄

 

오빠의 소개로 의사인 칼 콜비츠를 만났고, 1890년 결혼해서 베를린에 정착합니다. 칼 콜비츠는 진보 지식인이며 빈곤문제와 빈민 의료문제 개혁에 힘쓰던 인물입니다. 결혼 후 칼은 노동자 주거 지역에 자선병원을 열어 가난한 노동자들을 돌봅니다. 캐테는 남편 칼을 도우면서 빈민들이 살아가는 실상을 체험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지지하게 되며, 노동 문제에 대해 예술로 발언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칼 콜비츠는 죽을 때까지 그러한 아내의 작품 활동을 지지합니다.

반전의식이 담긴 작품들
캐테 콜비츠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억압받는 민중을 소재로 다루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반전反戰 의식이 담긴 전쟁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14년, 그의 막내아들이 지원병으로 참전한 지 두 달 만에 플랑드르 전선에서 전사합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로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1920년대 이후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작품들을 활발하게 발표하게 됩니다. 캐테 콜비츠 작품 경향의 처음은 역사 속에 실재했던 혁명이나 민중 봉기를 소재로 한 당시의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게 된 작품입니다.

두 번째는 당시의 미술계 주류를 형성했던 추상미술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의 흐름은 역사의 현실을 도외시 하고 미화시켜 미술의 형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캐테 콜비츠는 뛰어난 드로잉과 테크닉으로 노동자, 빈민의 생활을 사실에 가깝도록 묘사하며 현실 문제에 직접 접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문학작품에 대한 영향과 현실을 향한 직접 접근방식을 근거로 한 정치상황에 민감한 작품을 제작합니다. 이러한 작품 경향에 기초하면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폐한 독일의 상황을 목판화를 이용한 캐테 콜비츠만의 새로운 기법으로 발현해냅니다.

<지원병들>, <여인을 무릎에 안고 있는 죽음>, <부모>, <자식의 죽음>, <어머니들>에서 전쟁에 나가는 청춘들의 희생, 그들의 희생으로 인한 고통 받는 가족들을 표현합니다. 이 시기에 그린 자화상에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이를 달관한 듯한 표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반전 판화는 단순히 전쟁의 비극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라는 직접 체험에서 비롯된 한층 힘이 실린 깊은 호소를 표출해내고 있습니다.

독일은 피로 물든 대지에 슬픈 역사를 각인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권력의 이해가 부딪히는 곳에는 반드시 민중의 희생이 있었고 역사는 그 희생 위에 기록이 됩니다. 캐테 콜비츠는 그 역사 위에서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슬퍼합니다.

독일의 역사는 자식을 가진 모든 어머니들의 고통의 역사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진지했으며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하는 예술가로서 뚜벅뚜벅 걸어간, 살아 생전에 예술과 삶이 단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던 캐테 콜비츠의 삶은 큰 울림을 줍니다. 도서출판 운디네의 책 『캐테 콜비츠』에는 그 울림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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