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이여, 새똥을 맞으며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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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이여, 새똥을 맞으며 전진하라
  • 충청리뷰
  • 승인 2019.10.2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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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미 향출판평론가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미 향출판평론가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

 

고3 시절, 여러 곳의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었다. 모두 과를 달리해서 썼는데 그 중 한 곳은 문헌정보학과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이 있는 공간에 관해서라면 낭만적인 무드를 지울 수 없다. 도서관 사서라면 책에 폭 파묻혀서 원 없이 책 속 세상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출판사 편집자가 되고, 주위에 아는 사서들이 생겨나면서 그 환상은 차차 깨지기 시작했다. 책 읽는 사서를 노는 사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서들은 오히려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책의 해 포럼에서 “책 읽는 사서를 노는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던 오지은 광진정보도서관장의 말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사실 편집자도 마찬가지다. 출근해서 편집자가 책을 읽고 있으면 일 안 하고 논다고 생각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들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니 책들이 영글고 자라는 공간인 도서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강민선의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는 이 외의, 사서들이 처한 부당한 노동환경의 실태를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외피는 고백의 서사이지만, 강민선이라는 사서 한 명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현 시대 사서들의 삶이 직업인으로서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기 때문에 일종의 고발의 서사이기도 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에 소개된 도서관은,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도서관은 우리가 수만 번 퇴사를 고민하는 회사와 같았다. 그곳에는 책이 있고 그곳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만 책과 같아지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모두 책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

사서는 책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도 상대해야 하고 도서관 내에 붙일 각종 포스터를 제작해야 하고 관내에서 책을 이동해야 할 일이 있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게다가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기부금을 내야 하는 도서관도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 동네 도서관의 기간제근로자 구인공고를 눈여겨봤다. “보수: 월 1,875,150원(급식비 포함, 4대보험가입, 본인부담금 포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본인부담금’이 대체 뭘까. 아마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읽기 전엔 그냥 넘어갔을 법한 문구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눈엔 그 무엇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책과 같아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는 2018년 1월에 발행된, 강민선 작가의 세 번째 독립출판물이었다. 독자들의 사랑에 힘입어 같은 해 10월에 ISBN을 부여받고 상업출판의 세계로 나온 이 책은 기존 독립출판 버전에 내용을 추가해 재편집을 거쳤다고 한다. “노동에 대한 에세이이자 부당함에 대한 고발문이며, 직업인으로서의 사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선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인 이 책을 읽고 나는 강민선 작가의 팬이 되었다.

『시간의 주름』(독립출판물)을 구매했고 『상호대차; 내 인생을 관통한 책』과 『비행기 모-드』(독립출판물)를 선물 받아 소장하고 있다. 현재 1인출판사 임시제본소의 대표인 그는 올해 3월 『나의 비정규 노동담』이라는 노동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작가 지망생의 노동 에세이는 또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고 공감하게 만들지 기대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도서관 사서 실무저자 : 강민선출판사 : 임시제본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도서관 사서 실무저자 : 강민선출판사 : 임시제본소

 

덧붙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에 수록된 「부록1 사서 인터뷰」에 따르면 강민선은 살면서 세 번쯤 새똥에 맞았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새똥을 맞은 적이 있다. 어쩌면 인생이란 새똥을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직업인이여, 새똥을 맞으며 전진하라. 그 끝이 계속 이든, 이직 이든, 퇴사 이든 우리가 사건 지평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변함없을 테다. 새똥은 잘 지워지지 않지만 어쨌거나 닦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새똥이 지나간 자리엔 윤이 남을 뿐이다. 반짝반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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