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타지 떠도는 홍명희 문학제
상태바
아직도 타지 떠도는 홍명희 문학제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9.10.24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월 26~27일 청주와 괴산에서 열려, 생가는 답사만

 

홍명희 문학제는 올해 24세 청년이 됐으나 그동안 이념논쟁에 갇혀 왔다갔다 해야 했다. 지금도 문학제를 괴산에서 하지 못하고 타지를 떠돌고 있다. 과거 정부와 괴산군의 일부 보훈단체들은 벽초가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냈다며 문학제 개최와 문학비 건립을 반대하곤 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정부 때 방해를 많이 했고, 박 정부 때 가장 노골적인 훼방이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올해는 오는 26~27일 청주와 괴산군 일원에서 문학제가 열린다. 충북민예총과 (주)사계절출판사 등은 올해 특히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단재와 벽초, 그 붉고 푸른 정신’을 주제로 청주와 괴산군 일원에서 개최한다.

주최측은 “단재 신채호와 벽초 홍명희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우리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지금까지 이 둘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올해 홍명희 문학제는 단재와 벽초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6년 충북민예총 문학위원회와 사계절출판사는 이 문학제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충북민예총 문학위원회는 도내 작고문인 발굴사업을 벌여 오장환, 홍구범, 정호승 등을 발굴했고 문학제를 열었다. 홍명희 문학제도 이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 사계절출판사는 소설 ‘임꺽정’을 꾸준히 펴내는 곳이다. 양 측의 생각이 맞아 의기투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명희라는 이름은 이 문학제에서 비로소 대중들에게 불려졌다. 북으로 넘어가 고위 간부를 지냈다는 이유로 ‘빨갱이’ 낙인이 찍혀 소설조차 볼 수 없었기 때문.

문학제는 그동안 청주, 서울, 괴산, 파주 등지를 돌며 개최됐다. 제3회 때는 전국 모금운동을 벌여 문학비를 세웠고, 이후 남북한 문학교류 차원에서 벽초 손자인 소설가 홍석중을 초정하는 작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지회 관계자들은 평양 8·15 남북통일대축전에 참가해 홍석중을 만나고 이듬해 열린 홍명희 문학제에 그를 초청하기 위해 북 측에 제안서를 전달하는 등 노력했으나 불발되고 말았다. 홍석중이 쓴 소설 ‘황진이’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렸고 남한에서도 출간된 바 있다.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2009년에는 괴산군이 이 문학제에 예산 3000만원을 지원하려 했으나 보훈단체가 반대하자 군의회에서 삭감하는 일도 있었다. 괴산군민들은 빠진 채 외부단체가 문학제를 주도한다는 지적에 따라 괴산문화원이 주최측과 보훈단체들간의 접점을 찾으려 했으나 이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보훈단체들이 벽초의 북한 행적을 문제삼으며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충북작가회의는 모금을 통해 행사비를 마련한다. 또 문학비를 세울 때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문학비 건립을 반대해 벽초가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냈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넣고서야 세울 수 있었다.

정연승 충북작가회의 회장은 “과거보다는 덜하나 지금도 보훈단체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 보훈단체들은 벽초가 전범이라며 이런 사실을 밝히고 문학제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벽초의 문학과 관련해 행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청주에서 주로 하고 괴산 생가는 답사만 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고향에서 문학제를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