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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모으기’와 ‘난자 기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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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모으기’와 ‘난자 기증하기’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5.12.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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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상(충북인뉴스 편집장)
지난달 30일 충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충북민언련)이 주최한 ‘지역언론과 NGO의 역할‘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역 현안에 대해 감시와 비판기능을 발휘하는 언론매체와 시민단체는 서로에게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관점이 동일한 현안문제를 바라볼 때는 ‘동반자’ 지만 상호 마주보는 상황에서는 ‘견제자’가 될 수 있다.
 
당초 토론회의 취지는 지역언론과 시민단체간에 상생의 대안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직 언론인과 시민단체 실무자 6명이 2시간동안 토론을 통해 내린 결론은 “자기 영역(본분)에 충실하면 상생은 저절로 온다”는 것이었다. 다만, 서로를 제대로 알기위한 ‘실질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결국 민주사회의 권력서열(?)에서 제4부, 제5부로 불리는 언론-시민단체는 ‘어깨동무’ 하기 보다는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긴장관계’는 ‘합리적 비판’이 상호 용인되고 소통되는 관계를 말한다. 최근 중부매일신문이 충북민언련 등이 제기한 지방선거 여론조사 수익사업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즉각적으로 사과문을 내고 후속조치를 취한 것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여론조사 파문이 새충청일보 보도기사를 통해 공개된 것은 언론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상 언론사간에는 (불법행위가 아니라면)서로의 허물을 적당히 눈감아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새충청일보가 유구한(?) ‘동업자 윤리’를 깨고 과감하게 보도한 것은 언론 본연의 ‘보도 윤리’를 되살린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구현된 ‘보도 윤리’는 황우석 박사와 ‘PD수첩’에 대한 우리 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되짚어보게 한다. 현재 황박사 연구에 의문을 제기했던 ‘PD수첩’은 무리한 취재방식이 화근이 되어 ‘사이비’ ‘매국노’로 몰리고 있다. 2주간의 소용돌이속에 황박사는 병원에 입원했고 ‘PD수첩’ 취재진은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다. 남은 것은 문화방송이 방영을 유보한 ‘PD수첩’의 추가보도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황우석 박사 구하기’ 신드롬이다. 200여명에 불과했던 난자기증 여성이 며칠 사이에 1천명을 넘어서 황박사의 복귀를 기원하는 꽃길을 만들었다.

황박사 신드롬은 전체 신문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 신문을 통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황박사에 대한 의심과 비판은 진보를 표방한 ‘좌파들의 준동’이라는 ‘구국의 일념’으로 지면을 제작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11월초 ‘난자매매 브로커’가 검찰에 적발됐을때 난자 채취후 나타나는 ‘난소과자극 증후군’의 심각성까지 제기하며 비판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11월말 ‘PD수첩’을 통해 황박사 연구진의 난자매매 사실이 드러나자 ‘어차피 사멸한 난자 활용하는 것’이라고 제목을 바꿨다.

동아일보도 당초 ‘돈은 가깝고 법은 멀다’며 난자매매 관련법의 부실함을 지적했다가 황교수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적 정서 대 서구윤리 충돌’ ‘문화적 차이 무시한 일방적 재단’ 등으로 돌아섰다. 이같은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기사는 언론의 ‘보도 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며 국민들을 ‘우민화’에 빠뜨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 ‘PD수첩’이 취재원을 거짓으로 압박한 것이 ‘취재 윤리’를 어긴 것이라면, 조중동이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은 ‘보도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언론인이 취재윤리를 위반할 경우 관련 취재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반면 언론사가 보도윤리를 저버릴 경우에는 독자와 시청자 전부가 피해자로 남게 된다. 그동안 ‘PD수첩’은 방송 탐사보도의 ‘상징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수년간 숱한 특종보도를 남겼고 포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황박사를 상대로 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과거의 공적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비난 글만 무성하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PD수첩’의 불방된 추가보도 내용에 대해 조중동은 아무런 언급도 없다. 오로지 ‘황우석 박사 구하기’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며 내달리고 있다.

필자는 어젯밤 TV에서 난자기증을 위해 줄을 선 1천여명의 여성대열을 보며 IMF직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뭉치는 한국민의 ‘전통적 정서’라고 설명했다. ‘금모으기’ 행렬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물불 안가리고 뭉치는 ‘전통적 정서’를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이번 난자기증 여성대열을 보며 행여 또 고개를 갸우뚱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중동이여, 지금 우리가 얼마나 절박한 위기상황이길래 저렇게 줄을 서는 지 설명해 달라. 아니면, 그대들의 절박한 위기감을 우리들의 것으로 확대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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