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물갈이론을 비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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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물갈이론을 비판함
  • 한덕현
  • 승인 2019.11.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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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국회의원 물갈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세론을 얘기하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역대 총선 때마다 늘 단골로 거론됐고 결과는 항상 실패작이었다. 간혹 몇 몇 극소수의 새얼굴이 국회에 들어갈 뿐이었지 정치의 큰 흐름을 바꿀만큼의 획기적인 물갈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물갈이를 포장한 특정 정당의 싹쓸이 현상, 이른바 진영논리를 강화시킨 게 그동안의 총선 물갈이론이었다.

이번에도 물갈이론은 싹수가 노랗다. 물갈이를 표면에 내세우면서도 여당과 야당의 궁극적인 저의는 권력욕이다. 정치를 바꾸겠다는 진솔한 신념보다는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현혹시켜 표를 더 얻을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다.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지금과같은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효용성을 따져묻지만 정치권은 이를 물리적인 기능 문제로 변질시켜 되레 정치의 당위성을 곧추세우려 한다. 그러니까 이런 판국에서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렇듯 물갈이의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나름 갖게 된다. 광화문촛불로 확인된 시민혁명의 가능성, 그리고 조국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숨겨진 치부들이 극명하게 드러남으로써 이에 대한 국민들의 자기신념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 결국 이 것들이 내년 총선에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권자의식으로 나타날지 모른다는 믿음 에서다.

또 한 가지는 정치와 국회의원 무용론이 지금처럼 구체성을 띠고 국민들에게 다가온 적도 없다는 점이다. 민생과는 전혀 무관한 그들만의 이전투구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국익에는 백해무익한 왜곡된 진영논리로 막말싸움만 벌이는 ‘정치’는 말 그대로 국민들에게 목불인견의 참상만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도 내년 총선의 물갈이론이 힘을 싣는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물갈이는 정치에 대한 그동안의 전통적인 견제장치 이른바 진보와 언론, 시민운동의 도덕성이 상실됐다는 측면에서도 국민들이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다. 기성 정치에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지만 국가 기제의 한 축으로 이를 견제할 세력조차 마뜩잖은 상황에선 문제의 정치판을 확 갈아엎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진보와 언론은 조국사태와 무역규제에 따른 일본과의 갈등 속에 국민들에게 그 민낯을 내보인 꼴이 됐다. 수구(守舊)와 비교돼 오랫동안 정직과 양심의 가치를 전파하며 기성정치에 맞서는 도덕적 우월성을 지켜왔던 진보의 순수성은 어쨌든 조국 사건으로 인해 ‘너희들도 똑같은 놈’이라는 폄훼를 당하면서 부패한 정치의 대안으로 평가받기가 쉽지 않게 됐다.

친일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토착왜구로까지 전락한 언론의 행태를 목격한 국민들의 언론불신도 한계에 도달했다. 언론은 어느덧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이념과 파당성을 만들며 나라를 이간질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최근 불거진 한일, 한미 관계에선 매국노 짓까지 했다. 국민들의 시각에서 이제 언론은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견제장치가 아니라 그 정치를 더욱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는 독약이 될 뿐이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시민운동은 또 어떤가. 과거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투쟁과 전투력의 시민운동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근자에 들어선 지나치게 정치화, 연성화 됐다. 좌우 이념으로 갈리는 시민운동의 정파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변화된 국민감정을 생각하면 시민운동 역시 정치개혁과 관련해선 지난날과같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시민운동의 환경감시라는 것도 근원적인 공적개념이 아닌 다분히 관변 논리나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휘둘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민운동의 대표세력들이 급격히 관료화되고 있는 우리 지역사회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게 아니라면 하이닉스 LNG발전소나 도시공원 일몰제, 청주문화제조창 등의 현안에 대해 특정 단체의 몇 명을 빼고는 그토록 조용할 수가 없다. 오히려 민간인들보다도 기관유착에 기민하다는 비판마저 들린다.

자치단체장은 3선이면 끝이다. 제 아무리 일을 잘 한다고 해도 12년이면 어느 한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뿌리째 뽑아내고도 남을 기간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한 사람을 모셔야 하는 공무원과 그를 뽑아준 주민들은 식상하고 지친다. 12년이나 한 조직을 주무르다보니 내가 만난 그들은 대개 독불장군이었다. 아니 안하무인, 기고만장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것에 대해 자신이 ‘행정 전문가’임을 내세운다. 국가 선출직 중에서 국회의원만 평생을 해 먹을 수 있다. 물론 정권창출이 목적인 정치임을 고려한다면 능력있는 국회의원이 다선으로 오래할수록 정당과 해당 지역구에는 유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선 다선이 못되면 축에도 못낀다. 그렇더라도 애경사 챙기고 지역직능단체 껴안는 것으로 표관리를 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놔둘 수는 없다.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는 국회 구성과 관련된 수치로만 보더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우리나라 50세 이상 유권자는 46%이지만 50세 이상 국회의원은 전체의 82%나 된다. 반면 50세 미만 유권자는 54%인데도 50세 미만 국회의원은 불과 18%밖에 안 된다. 꼰대들의 국회가 되고 있으니 그들이 펴는 정치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친일로써 가세(家勢)를 일으킨 조상의 은덕으로 부의 상속과 병역기피 등 특혜를 받아 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부지기수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세계평균 24%에도 크게 뒤지는 17%에 머물러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론이 압도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유권자 의식이다. 유권자들이 앉았다 하면 정치를 욕하는 만큼 이를 표로써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지금까지 국민들이 기피하고 못해 왔다.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의 타락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유권자의 책임이다. 내년 총선에선 이부터 고치자는 것이고 바로 이래야만 광화문 촛불혁명은 완성된다.

현재의 4선의원이 또 당선되면 우리는 똑같은 사람을 무려 20년동안 마주하게 된다. 지난 16년 동안 별 영양가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그들이 20년동안 한 일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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