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은 과연 귤을 먹었을까?
상태바
황우석은 과연 귤을 먹었을까?
  • 충북인뉴스
  • 승인 2005.12.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진(박학천 논술교실 원장?전 서울신문기자)
   
시골뜨기인 내가 귤을 처음 먹어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서울에서 수퍼마켓을 하시던 큰고모님이 모처럼 친정나들이 오시면서 종합선물세트와 함께 가져 오셨기 때문이다.

30년 전, 그것도 면단위 시골 마을에서 자란 내가 당시 가까운 외국쯤으로 알던 제주도에서 건너 온 귤을 처음 먹어봤으니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던지.

다음 날 나는 그만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귤이 엄청 많다고 ‘뻥’을 치고 말았다. 기껏해야 ‘라면땅’이나 ‘쫀디기’같은 주전부리를 먹던 친구들에게 나는 금세 그들의 로비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귤 하나에 뻥튀기를 봉지채로 주겠다는 ‘빅딜’이 들어왔고 종이딱지 수십 장을 주겠다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스무 개 남짓 되던 귤은 우리 가족 일곱 명이 전 날 거의 다 먹어치웠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할머니 머리맡에 있던 두서너 개에 불과했다.

동네친구들에게 말잔치만 벌인 나는 한동안 뻥쟁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고 그 이야기는 아직도 명절 때 고향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심심찮게 안주거리로 오르내리곤 한다.

요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황우석 교수 관련 뉴스를 보며 내 철부지적 추억을 떠올린다. 귤을 먹었다고 자랑은 해놓고 친구들 눈앞에 내보이지 못한 나나 ‘원천기술’은 있다고 주장하지만 온갖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황 교수나 그 답답한 속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의 영웅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우리의 초라한 자존심을 한껏 부풀려주던 자랑거리였다. 어디 동시대인에게 난세 아닌 세상이 있을까마는 요즘처럼 마음에 두고 싶은 영웅이 보이지 않던 때에 그는 확실한 영웅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버리고 싶지 않은 믿음 한 조각이 있다. 황 교수는 분명 ‘귤’을 먹어봤을 거야. 우리 앞에 당장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어딘가에 확실히 보관하고 있을 거야.

설마 내가 귤을 친구들에게 가져오지 못한 것처럼 그가 원천기술이라는 것을 끝내 보여주지 않기야 하겠냐고. 그는 분명히 말했잖아. 자신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고, 이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자랑이라고. 아무리 궁지에 몰린 상황이기로서니 학자로서의 마지막 양심까지 팔아가며 뻔한 거짓말을 하겠어?

그 진위가 가려지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천기술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원천기술이라고 할 만한 게 있는지, 혹 있으면 심하게 과장하지는 않았는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그 알량한 원천기술 하나 없이 큰소리치는 족속이 얼마나 많은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나는 어떤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나 자문해본다. 거미가 실을 뽑아내듯 자연스럽게 논술문을 쓸 수 있는 원천기술이 내게 있나? 다소 난해한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줄 수 있는 기술을 나는 가지고 있나? 십 수 년 신문기자를 해서 이제 글쓰기는 몸에 배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짧은 글 하나 쓰는 데도 씨름하기 일쑨데.

우리들은 우리들의 원천기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다들 알고 있다. 공무원의 원천기술은 어떻게 민원인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봉사하느냐에 있다. 행정가는 마땅히 여름 가뭄에 단비가 대지를 적시듯 정책을 골고루 펼치는 방법에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정치인의 원천기술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용기를 주고 희망을 심어주느냐에 있어야 한다. 그런 원천기술이 없는 사람들의 말잔치는 다 ‘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