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체육회장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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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체육회장 딜레마
  • 한덕현
  • 승인 2019.11.2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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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역시 선거는 설레임을 준다. 오는 연말을 전후로 전국에서 치러질 자치단체 민간 체육회장 선거가 곧이어 있을 21대 총선 못지 않은 관심을 끈다. 진담이든 농담이든 “너 한번 나가 봐라”는 달콤한(?) 유혹을 받는 이도 주변에 부지기수다. 누구는 돈이 많아서 또 누구는 체육과 인연이 깊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는 자치단체에 얽매여 있던 ‘체육’의 독립을 꾀한다는 취지이지만 순수 민간인이 지방 체육계의 수장을 맡는다는 건 사실 말처럼 쉽지가 않다. 돈 때문이다. 아마추어 체육이란 것이 돈과는 거리가 멀기에 어느 조직이든 그 책임자는 문제의 돈을 지원하거나 확보하는 데서 역량을 발휘해야만 성공한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처럼 체육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체육인들이 지방자치단체의 각급 체육회 조직을 책임지는 게 최선이겠지만 결국 돈이 걸림돌이 되고 내년 민간 체육회장 선거 역시 이 돈으로 인해 지금으로선 흔쾌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여러 변수를 안고 있다.

이를 감안해 후보난립을 막기 위한 조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민간 체육회장에 뜻이 있는 사람은 당장 자신의 지갑부터 확인해야 할 판이다. 광역지자체 체육회장 선거의 경우 5000만원, 기초 지자체는 2000만~3000만원 내외의 후보자 기탁금을 내야 한다. 지방선거의 도지사 입후보 기탁금 5000만원과 시장군수구청장 기탁금 1000만원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벅차다. 이 기탁금은 20%이상 득표 시에만 전액 환급받을 수 있어 공직선거법상 민선 단체장·지방의원의 환급 기준인 15%이상 보다도 조건이 더 까다롭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지자체로부터 일괄 지원받던 운영비 충당을 위해 출마자들은 기탁금 이외에도 연간 출연금으로 적게는 수 천만원, 많게는 수 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체육인이 아무리 뜻이 좋아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자리가 민간 체육회장이다.

우리나라 체육의 본산인 대한체육회를 보더라도 이 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대 회장들 중엔 정치적 거물이나 재계를 상징하는 기업인들이 많았다. 기업인들은 자기 돈을 투입하라는 얘기이고 유명 정치인들은 자신의 끗발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돈을 끌어오라는 취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체육의 부흥기가 시작됐다는 70년대 말을 기점으로 보면 기업인들은 정주영(27대, 전 현대그룹 회장) 박용성(37대, 전 두산그룹 회장)등이 대표적이었고 정치인으로는 박종규(25대, 박정희 경호실장) 노태우(28대, 전 대통령) 김정길(35대, 전 행자부장관) 등을 꼽을 수 있다.

 

체육계의 가장 상위 조직인 체육회 뿐만 아니라 이에 속한 종목별 가맹 경기단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 경제인들이 회장직을 수행하며 음으로 양으로 해당 종목을 지원한다. 그러다보니 과거 지방체육회의 비인기종목의 경우 나서는 사람이 없이 관련 업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종목별 회장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탁구협회장은 탁구장 주인이, 검도협회는 검도장 주인이 맡는 식이다.

민간 체육회장 선출이 체육의 독립성과 선진화를 꾀한다는 명분이지만 이처럼 돈의 딜레마 때문에도 오히려 정치권의 입김에 더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는 이래서 나온다. 체육계라는 거대 조직을 의식한다면 현직의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장을 꿈꾸는 인사들은 표를 의식해서라도 이 문제에 강건너 불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지역의 분위기를 보면 지방자치단체마다 내년 민간 체육회장 선거와 관련해 숱한 말들이 만들어지고, 체육인과 기업인 심지어 정치인들까지도 주변으로부터 부추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기업인들은 정치적 부담으로, 순수 체육인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나서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돈문제로서 이를 어떻게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으로 풀어내느냐가 화급한 현안으로 등장했다.

어차피 체육과 돈은 떨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기에 앞으로 체육회의 운영에 지방자치단체가 올인하지 않는 한 이를 보완하고 보충할 재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돈은 곧 해당 조직의 사기와 관련되고 이 사기는 선수들의 경기력과도 직결된다. 각종 국내 및 국제대회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는 종목의 협회는 십중팔구 좋은 조건의 회장과 임원진들이 배후에 있다는 걸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체육인들은 사기를 먹고 자란다는 속설만 봐도 그렇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어야 비로소 경기의 성과가 나올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라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재력을 갖춘 기업인들이 지방 체육회장을 맡아 사심없이 지원을 하거나 아니면 순수 체육인이라도 주변을 꿰어 합리적으로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면 된다. 물론 두 가지 경우 모두 시민과 도민들로부터 원초적인 신망을 받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이게 아니고 정치적 욕망과 사심으로 덤빈다면 부작용은 불문가지다.

이미 특정지역에선 후보간 과열경쟁과 선거인단 구성의 잡음으로 분위기가 혼탁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분명한 사실은 스포츠는 스포츠답게 관리돼야 한다는 것,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되면 그 것으로 끝이다. 체육인들의 가장 큰 장점은 어쨌든 다른 직업의 누구보다도 담백, 순수하다는 점이고 선거로 인해 이를 변질시키면 그 당사자는 지역사회의 패악이자 죄인이 된다.

민간 체육회장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지역을 대표해온 기업인들이다. 지역을 연고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지만 지역사회 환원이나 기여에는 극히 저조했다는 점에서다. 솔직히 이들은 자신의 부를 배경으로 권력기관과 유착하는 데는 민첩했을 망정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에는 더없이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때문에 이들이 이번 민간 체육회장 선거에 관심을 갖고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다. 지역에서 번만큼 이젠 지역을 위해 쓰라는 기대감에서다. 가장 물망에 오르는 기업은 D, W, S, H, R사 등이다. 체육회장이라는 자리가 어차피 자기돈을 써야 하는 봉사성격이 짙다면 지역을 시끄럽게 하는 경선보다는 추대형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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