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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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 한덕현
  • 승인 2019.12.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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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지난 3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검찰 기자단’ 편은 우선 그 발상부터가 언론계의 관행(?)을 깼다. 우선 특정 기관의 기자단 전체를 문제삼아 취재시스템을 작심 비판한 것이 그렇다. 아주 드물었지만 그동안의 기자단 비판은 특정 출입기자의 비위행위가 드러날 경우 에둘러서 해당 기자단에 어깃장을 놓는 수준이었다. 언론사와 특정 출입처의 기자단이 서로 날을 세우는 건 거의 없다.

두 번째는 출입처와 기자단이 동시에 들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도 극히 드물다. 박근혜 정부 때 기자들이 취재도구를 소지하지 않고 또 질문도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한 동안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입줄에 올랐지만 이 때도 지금처럼 청와대와 출입기자가 공개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계인들 모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또 하나는 PD수첩 내용중에 한 언론사 기자와 대검 간부 사이의 통화내용이 공개된 점과,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기자와 검사의 티타임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공론화한 점이다. 이 문제는 기자의 취재권 및 국민의 알권리와 맞물려 논란의 소지가 특히 크다. 사실 성역없는 보도를 견지해야할 기자의 입장에선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하려면 전화통화와 티타임 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정보를 빼내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숙명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출입처에 의해 고위, 악의적으로 이용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당초 PD수첩에 대한 해당 기자들의 반박성명은 ‘법조출입기자단 일동’ 명의로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총의를 얻지 못하자 개별 소속사별 22명의 이름으로 나갔다고 한다. KBS, MBC, 경향신문, 한겨레 등은 동참하지 않았다. 때문에 최근 일련의 검찰수사에 대한 언론사간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며 일종의 진영논리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꼭 이런 식으로 진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적으론 방송내용과 반박성명 모두 새겨들을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반박 성명에 제시된 PD수첩에 대한 불만요인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첫째 검찰과 기자단을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로 폄훼했다, 둘째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한 시민단체의 통계를 근거로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 결과로 치부했다, 셋째 땀내나는 외곽취재의 결실도 최종적으로 검찰 확인단계를 거치고 나면 검언간 음습한 거래로 둔갑시켰다, 넷째 인테뷰이(취재원)를 가명으로 처리하고 음성 변조등을 함으로써 기사의 허구성을 스스로 드러냈다, 다섯째 수사 검사가 기자 앞에 조서를 놓아둔채 전화통화를 핑계로 자리를 비켜줬다 등이다.

 

이 내용들을 곰곰이 들여다 보면 이 정도의 불만에 굳이 집단행동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역시 초점은 윤석열 체제 출범 이후의 검찰 수사에 모아진다. 반박 기자들의 입장에선 이를 묵과할 경우 검찰관련 보도가 결국엔 검찰의 의도대로, 검찰 입맛에 맞춰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 대상을 익명과 음성변조로 처리하는 것은 ‘취재원 보호’를 위한 언론계 불문율이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것이 거짓으로 꾸며진다면 이는 당연히 기사가 아니고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기자 앞에 조서를 놓고 딴 짓을 한다는 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에서도 흔히 있던 일이다. 수사관의 서랍까지 뒤져 자료를 빼가는 기자가 유능과 민완으로 대접받았다.

끝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PD수첩이 검찰과 기자단을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로 규정했고 이를 기자들이 성명서에 적시해 반박했다는 점이다. 차라리 인정하고 자숙, 자성하는 내용을 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대한민국 모든 기관(출입처)과 기자단은 악어와 악어새라는 관계설정에 대해 죽어도 아니라고 답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악어와 악어새라는 비유는 우리나라 취재관행상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해당된다. 여기에 NO!를 외치겠다면 노무현의 ‘논두렁 시계’와 세월호 참사때의 ‘전원 구조’ 보도에 대해 우리나라 모든 언론들이 고해성사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말한 땀내나는 외곽 취재라는 것도 허허롭기 그지없다. 기자들 사이에서 출입처의 가장 성역으로 꼽히는 검찰 관련기사가 ‘단독’이나 ‘특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지금까지 사례의 절반이라도 출입기자들의 땀내나는 노력으로 작성됐다면 논두렁 시계를 전파한 이인규가 외국으로 도망가 그토록 오랫동안 귀국도 못하고 떠돌지는 않았다. 하필 그가 요즘 시기에 돌연 귀국한 것도 흥미롭다.

출입처와 기자단의 역학관계는 무슨 논리보다는 그저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편하다. 요즘은 모든 기자단이 출입처의 편의제공을 원천 거부한다고 하지만 출입처 및 그 곳 관계자와의 인간적인 관계는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출입처의 구성원들과 호형호제하는 기자가 고급 정보도 잘 빼냈고 이래야만 회사가 원하는 비즈니스도 능숙하게 처리했다. 이런 관행들이 출입처와 기자단의 유착 마인드를 부채질했고 이는 곧 '출입처 이기주의'라는 기형의 취재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도 이런 것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PD수첩이 전체 법조기자단을 마치 범죄집단처럼 묘사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언론의 치부를 드러낸 용기있는 기획이라고 여기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은 분명해졌다. 신문으로 편집되고 방송으로 보도되는 내용에는 분명 해당 기자가 출입하는 기관의 의도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조기자, 이들의 출입처 이기주의로 양산된 받아쓰기 기사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힘들게 했는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법조출입기자들의 이번 단체행동은 PD수첩의 비판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반성, 그 것도 뼈를 깎는 참회로 나타났어야 했다. 과거 독재·권위주의시대의 사법살인을 똑똑히 기억하기에 사법개혁과 검찰개혁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언론개혁이고 PD수첩은 지금, 이 엄중한 시기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언론의 추악한 환부에 스스로 메스를 가한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언론에 묻고 있다. 결론을 미리 내리고 진행하는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가 과연 국민의 민생과 국가의 안위에 무슨 의미를 주는지를... 사람들은 또 묻는다. 검찰에는 임은정 서지현 검사가 있는데 왜 언론에는 임은정 서지현 같은 기자가 없는 지를...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자 대신 PD가 나섰다. 기자들의 굴욕은 이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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